제 19호 태풍 솔릭이 전남 목포로 상륙, 전북을 거쳐 강원도로 빠져 나갔지만 세력이 크게 약화돼 전북에는 별다른 피해를 남기지 않았다.

당초 솔릭은 서해안을 타고 오르면서 막대한 피해를 안겨줄 것으로 예상됐으나 우리나라에 가까이 다가오면서 일본을 관통한 20호 태풍 시마론과의 영향으로 진로와 세력이 크게 바뀌었다.

박장우 전북포스트 주필

태풍 솔릭이 너무 순하게 지나간 탓인지 도민들은 효자 태풍이란 별칭까지 붙였다. 필요한 비만 내리고 바람조차 제대로 불지 않아 피해가 많지 않았다고 해서다.

그러나 제주도 부근에서는 너무 늦게 움직여 느림보 태풍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이 때문에 제주도와 전남 해안 양식장에는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다.

제주 도민들은 “다른 태풍들은 몇 시간이면 지나가곤 했는데 이번 솔릭은 하루 이상 제주도 부근에 머물면서 하루 종일 비바람을 쏟아부었다”고 말했다.

어찌됐든 태풍 솔릭으로 1973년 통합 관측 이래 가장 더웠다는 올 여름 무더위도 한풀 꺾일 것으로 보인다. 들녘의 풀도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는 처서도 지난주 태풍 솔릭과 함께 지나갔다.

처서(處署)는 여름이 지나 더위고 가시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고 해서 불리는 절기다. 옛날부터 처서가 되면 여름동안 장마에 젖은 옷이나 책을 햇볕에 말리기도 했다.

처서가 지나면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서 풀이 더 자라지 않기 때문에 논두렁이나 산소의 벌초를 한다. 가을 채소의 씨앗을 파종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옛말에 처서에 비가 오면 ‘독의 곡식도 준다’ ‘십리에 천석 감한다’는 말이 있는데 처서에 비가 오면 흉년이 든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런데 올해는 처서에 태풍 솔릭이 올라왔는데도 사람들은 효자 태풍이라 불렀다.

오는 9월 초순에도 무더위가 이어질 것으로 예보되고 있지만 태풍 솔릭이 지나간 뒤 많은 비까지 이어져 폭염의 기세는 다시 살아날 것 같지 않다. 아마 이번 비가 그치면 추석맞이 벌초 행렬이 본격화되지 않을까 싶다.

조상들의 묘지를 말끔히 단장하는 벌초는 마법과 같은 힘을 보여준다. 벌초하는 기간에도 30도 이상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곤 하지만 후손들의 벌초 열성은 막지 못한다.

1000미터가 넘는 높은 산에도 무덤이 적지 않다. 옛날에는 하늘과 가까운 곳이나 주변 경치가 좋은 곳은 모두 명당이라 해서 그 높은 곳에도 조상들을 모셨다. 지금도 검은 빛깔의 비석으로 치장하는 것을 보면 후손들의 관리가 보통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지금 명당은 큰 도로에서 가까운 곳이어야 한다고 한다. 후손들이 찾기 쉽고 관리하기 좋아야 한다고 해서 말이다.

옛날 명당이 조상들 중심이었다면 지금 명당은 후손들 중심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길가 조상묘지도 신경 쓰지 않는데 산꼭대기에 묘지 만들어 놓으면 누가 찾겠느냐고 말이다.

벌초할 묘지가 많은 집안에서는 벌초 때에 친척들까지 동원하곤 한다.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사촌들도 찾는 날이다. 벌초가 나름대로 집안 단합대회 역할을 하는 셈이다.

벌초를 전문적으로 해주는 업체도 성업 중이다. 벌초를 귀찮은 일로 여기거나 하지 못할 사정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대신 벌초를 해주고 있다. 벌초 대행으로 수입이 짭짤한 농민들도 적지 않다.

한때 벌초하는 예초기를 구입해서 10년 가까이 사용한 적이 있었는데 거의 1년에 한 두번 사용하는 것이라서 시간이 지나다 보니 관리하기도 귀찮고 시동도 잘 되지 않아 애를 먹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성능이 우수하고 무게도 가벼운 제품들이 매년 새롭게 선보이고 있는데 렌탈업체에서도 구비하고 있어 손쉽게 빌려 쓸수 있다.

다만 예초기는 1년에 한 두번 밖에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의 경우 안전에 특히 주의해야 한다. 벌초하는 때에 안전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이유도 평소에 예초기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갑자기 익숙하지 않은 기계를 다루게 되면서다.

태풍 솔릭이 효자 태풍 노릇을 하면서 추석 벌초도 본격화할 것 같다. 폭염으로 한껏 자랐을 잡초를 제거하며 조상의 음덕을 기리고 집안 친척들과 화합을 다지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 박장우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