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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회 마을에서 천하를 보다 - 스마트팜을 공동체 자주관리경제의 모범으로<신년기획>전라도 정도(定都) 천년...'동방의 등불'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강주영 편집위원  |  kjyn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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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8.13  17:5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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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층 양액 재배 스마트팜 개념도./

토지와 결합된 농민은 비록 소작농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노동을 자신이 통제하였다. 그것은 가난하더라도 노동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가지는 자치·자주노동이었다.

토지로부터 분리되고 신분제의 사슬을 벗어나는 일은 자본주의를 위한 필수적인 경로였다. 토지와 신분제라는 이중의 사슬로부터 해방된 이들이 곧 무산자 프롤레타리아였다.

농민은 비록 가난하거나 소작농이라도 토지와 결합되어 있고, 지주에게 수탈당하더라도 토지에 대한 지배력을 가지고 농업 노동과 결합된 농촌 사회를 구성하였다. 자기 땅은 한 뼘도 없을망정 ‘점유는(노동) 소유에 앞선다.’는 생각처럼 평상 시기의 소작권은 세습되었고, 지주라하더라도 소작인의 변경 같은 것은 함부로 할 수 없었다.

소작인의 변경은 전통 공동체 사회의 사활이 걸린 문제였다. 사람과 가축의 힘만으로 농사를 짓는 시대에 노동 공동체는 생존의 일차적인 요소였다.

 

자본주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값싼 노동자가 필요하다. 이의 공급지는 농촌사회였다. 70년대에 경운기, 탈곡기, 통일벼, 유신벼 등의 보급, 비닐하우스 기술은 농업 생산력을 증진시켰다. 그 결과로 농촌에서는 잉여 노동력이 발생했고 이들이 무산자로 공업 노동에 투입될 수 있었던 것이다.

70년대의 혼분식 장려 운동도 국민 건강이나 식량 부족을 메우기 위한 조치만은 아니였다. 부족한 식량을 다른 방식으로 보충해야 경제 발전을 위한 공업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농민은 자본주의 발전을 위해서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제 당했다. 그 결과가 식량자급률 25%이다. 북한은 80%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벌어지고 있다. 농업이 토지와는 무관하게 되었다. 농민은 목가적으로 보이지만 고된 노동과 토지로부터 분리될 수 있게 되었다. 스마트팜이 그것이다.

스마트팜의 적층 양액 재배는 단위당 생산량을 토지보다 몇 십 배 올릴 수 있다. 24시간 전천후로 자연조건에 구애받지 않는다.

축구장 크기의 50층 빌딩이면 전주 시민의 모든 채소를 공급할 수 있다. 축구장 국제 규격은 68×105m=7,140㎡이다. 1층에 10판의 양액판을 적층한다면 7,140×10판×50층 = 3,570,000㎡ = 357ha이다. 

 

도시의 사무실에서 모니터를 보며 키보드로 짓는 농사는 토지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 사실은 농민이라는 계급이 더 이상 사회적으로 필요 없게 되었다는 뜻이다.

농민이 없는데 농촌 사회가 있을 수 없다. 농촌 사회가 필요 없는데 군 단위의 지방자치단체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농촌은 사라지고 도시민의 필요에 의한 전원 휴양 도시만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농민이 아닌 자본가에게서 식량을 사 먹어야 한다. 비록 지금 대형마트에서 식량을 사더라도 그것은 농민의 생산품이었다. 앞으로는 달라진다. 

   
식물 빌딩 스트팜 공간 개념도. /

토지의 생산력은 한계가 있어서 농민의 노력과 기술에 차이가 있더라도 생산력의 차이는 사회적으로 별 의미가 없었다. 그러나 스마트팜 같은 기술 농업은 기술력에 따라, 누가 더 공중으로 큰 식물 빌딩을 짓느냐에 따라 생산력의 차이가 크게 달라진다.

사회 생산력의 발전 수준을 판단하는 척도는 “무엇을 생산하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어떻게 생산하고 어떤 노동 도구를 이용해 생산하느냐에 달려 있다.” 때문에 상징적으로 말하면 삼성 스마트팜 농업 체인점이 우리의 식량을 좌지우지하게 된다. 식물 빌딩에는 농민이 아닌 프롤레타리아가 노동하게 된다.    

그리하여 스마트팜은 수천 년 농업 사회를 붕괴시키고 자본의 왕국을 도래시킨다. 농지는 농업이 아닌 그 무엇인가의 용도로 바뀌게 될 것이다.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자본주의가 일반화되면서 농민은 절해고도에 갇힌 계급적 존재가 되었다. 농민을 대변하는 정치적 상부구조는 존재하지 않거나 아주 미약하다. 이제 인구의 10여%에 지나지 않은 거추장스러운 마지막 농민을 추방하기 위한 자본의 스마트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기술 발전의 어떤 단계에 이르면 농민이 지금까지 토지에서 움직였던 기존의 노동 방식이나 생산 방식은 낡은 외투로 된다.

 

농민적 생산의 법률적 표현일 뿐인, 즉 일하는 농민이 농지를 소유한다는 경자유전의 헌법상 원칙은 사회적 모순에 빠진다. 스마트팜 기술의 발전으로 농민의 토지 소유는 사회적 생산에서 더 이상 의미 없게 되었다.

한 사회구성체는 그 내부에서 발전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생산제력이 발전하기 전에는 멸망하지 않는다. 첨단 과학기술이 자연의 조건을 극복한 스마트팜은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며 농민을 멸망시킨다. 

그러나 마지막 희망은 있다. 스마트팜이라는 새로운 보다 높은 생산 제관계는 농민들의 연합체가 자본의 소유를 막아내고 농민적 소유를 확립할 수만 있다면 이제 현 사회에서 농민들의 존재는 기존의 자본사회에 일대 타격을 가하게 된다.

사회의 질곡이 될 스마트팜이 공동체경제, 자주관리 경제의 새로운 모범을 세워 약육강식 우승열패의 자본주의 사회에 파열구를 내게 된다. 그것도 자동차나 반도체가 아닌 식량이다. 자동차나 반도체는 없어도 되지만 인간은 식량을 먹어야 산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천덕꾸러기에 불과했던 농민들이 파멸의 위기를 전화회복의 기회로 삼는다면, 농민의 존재는 자본주의를 낡은 사회로 만들고야 만다. 이리 된다면 사회 변혁의 불씨는 이제 농민이 당길 것이다.

농민이여 스마트팜을 반대하지 말고 장악하라. 스마트팜을 농민연합체 소유로 확립하라. 도시 지역에서는 스마트팜-식물빌딩을 세우지 못하게 하라. 스마트팜을 공동체 자주관리경제의 항산항심체로 만들라! 기술 발전이 사회의 정의와 맞게 하라.

당신의 정의는 무엇인가? 당신은 무엇을 지지하는가? / 강주영 편집위원

   
글쓴이 강주영 전북포스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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