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변하지 않고 항상 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명구가 있는데 이 말이 요즘처럼 실감나게 느껴지는 때도 없었던 것 같다.

지난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30여년 만에 지역구도가 깨졌다는 것이 그 첫 번째 일이고, 올 들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까지 급진전된 한반도 평화 움직임이 그 두 번째 일이다.

박장우 전북포스트 주필

정치권의 고질인 지역구도는 그동안 유권자의 세대교체와 함께 조금씩 와해되는 조짐도 없지 않았지만 이번 지방선거처럼 한꺼번에 보수당의 아성이 무너지고 진보당이 전국을 석권하다시피 한 적은 없었다.

이번 지방선거 승패를 가른 최대 이슈는 남북, 그리고 북미 정상회담에서 보여준 한반도 평화 무드였다. 경제적인 문제, 다시 말해 평소 같았으면 대단한 위력을 발휘했을 경제 불황이나 청년실업, 그리고 최저임금 논란 등 다른 화제들이 국민들의 관심을 끌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데도 보수 야당은 국민들의 바람을 읽지 못하고 예전과 같이 남북대결 구도를 이용, 선거운동 하는 구태를 벗지 못하다 국민들로부터 심판받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풀이다.

특히 눈여겨 볼 대목은 남과 북 그리고 미국 정상들의 관계에 있어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가장 적극적으로 변화된 모습을 보여줬던 것이 아닌가 싶은 점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핵과 미사일 개발에 주력해왔으나 올해 들어서는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국제무대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이제 북한도 변해야 산다는 것을 깨달은 것 아닌가 싶다.

물론 남과 북, 그리고 미국 관계는 어느 순간에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될지는 또 모를 일이다. 과거에도 상당한 수준의 화해 단계까지 나아갔다가 도로묵이 된 적이 없지 않았다.

다만 이번에는 상황이 조금은 다른 것 아닌가 싶다는 점인 것 같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국제무대 진출에 우호적인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많이 남아 있고,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치적인 계산도 들어맞는 측면이 없지 않은 것 같기 때문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도내 곳곳으로 자전거 여행을 다닌다. 지난 10여년 사이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을 찾으라면 무엇보다 국도나 지방도 아닐까 싶다.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마을을 지나가던 도로는 대부분 우회도로로 대체됐다.

옛 도로로서는 급격하게 늘어나는 통행차량을 수용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옛 도로 주변에서 장사했던 유명 음식점들도 모습을 감춘 곳이 적지 않다. 모두가 어떤 필요성에 의해서 생겼다가 상황이 변하니까 모두 바뀌고 만 것이다.

지금 우리 국민들도 남북 관계, 그리고 정치권의 변화를 갈망하고 있고 이번 지방선거에서 그 욕구가 표출되지 않았는가 싶은 것이다. 그리고 다음에는 호남 유권자들이 새로운 정치지형을 요구받을 정도로 급박하게 전개될지도 모르겠다.

너무 오랫동안 경직돼 있었던 만큼 한번 풀린 물꼬는 남북 냉전체제 해제든, 지역구도 해체든 가속도가 붙을 수밖에 없을 것 같이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부산과 울산지역 구청장이나 지방의원들도 진보당 후보들이 대거 당선됐다는 사실 아닐까 싶다. 밑바닥부터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사실 영남 보수, 호남 진보로 양분됐던 정치 지형은 어느 한쪽이 무너져야 풀릴 문제로 봤다.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졌던 진보정권에서는 소위 동진정책이 추진됐던 적이 있었고 보수정권에서는 호남을 에워싸는 고립정책이 실시된 때도 있었다. 언제나 ‘닭과 달걀’ 논리로 상대방의 항복을 먼저 요구하면서 오늘에 이른 것이다.

만약 이번 지방선거에서 한반도 평화라는 초대형 이슈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보수야당의 대승으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문재인 정부의 지난 1년 성과는 국민들로부터 칭찬받을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 국민들은 호남지역의 정치 선진화를 더욱 강하게 요구하게 될지도 모른다. 보수당도 뿌리 내릴 수 있도록 마음의 빗장을 확 풀라고 말이다.

지금은 변화의 시대이다. / 박장우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