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현 씨

남북 정상회담은 감동 그 자체였다. 65년간 지속된 갈등과 대결의 장을 끝내고 한민족으로서의 공동번영을 이룩해나가자는 양 정상의 진심이 통했고 이를 지켜보는 우리는모두 통일이 멀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며칠 전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한의 서로 다른 표준시부터 통일해야하지 않겠냐며 30분 느린 북한 표준시를 우리 측 시간대로 맞추겠다고 전해왔다.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작은 부분, 실천 가능한 부분부터 하나씩 통일하다보면 큰 그림도 얼마든지 같이 그려나갈 수 있을 것이다.

 표준시 통일에 이어 이루어져야 할 후속작업은 무엇일까? 우선순위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나는 남북한의 언어 통일 작업이라고 본다. 분단된 이래로 65년이나 남북은 서로다른 언어체계를 사용해왔고 이로 인해 어휘와 문법에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좀과장되게 말하자면 같은 언어권이므로 대화에 문제만 없을 뿐이지 의미전달과 소통에절대로 완벽을 기할 수 없는 것이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양 체제의 상이한 단어를 시범 공용해본 다음 남북의 국어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언어 통일작업을 신속히 진행해나가야 한다. 통일이 20년이 걸릴지30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매일 쓸 수밖에 없는 언어체계부터 선(先) 통일이 되어야 나중의 혼란을 최소화하고 완벽한 통일에 걸리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남측은 남측대로 북측은 북측대로 서로의 어휘체계를 고집하려 할 것이다. 남측은 북측이 너무 원리원칙을 고집한 나머지 굳이 외래어로서 원어 그대로 써도 될 것들까지 억지로 우리말로 변형한 어휘들이 많다고 비판해왔고 북측은 남측이 주체성을 상실하여 순수 국어사용에 소홀해왔다고 비판해왔다. 양측의 의견 모두 옳다. 그러나 전직 한국어교사로서의 솔직한 의견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나는 북측의 주장에 도 일리가 있다고 본다. 정치체제와 경제 수준 등 모든 부분에 있어 남한이 북한보다 월등한 것이 사실이나언어 사용에 있어서만큼은 북한의 우리말 사랑을 본받아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지나치게 외국어와 외래어 사용을 아무런 고민 없이 많이 써왔고 또 쓰고 있으며 당장 모범을보여야 할 학계와 방송계부터 외국어를 많이 써야 소위 ‘있어 보인다’는 잘못된 의식을 가지고 있다. 단, 북한의 문화어에는 두음법칙이 없는데 발음의 편리성과 언어사용의효율성을 위하여 두음법칙은 꼭 필요하므로 북한 주민들이 남측의 두음법칙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4월 29일 청와대 발표와 언론사 뉴스.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은 북미정상이 비핵화문제를 본격 협상할 모멘텀을 마련했다.’‘북미 정상회담에서본격 비핵화에 대한 협상이 이뤄지기 전까지의 로드맵이 담기지 않은 것이 아쉽다.’‘모멘텀’을 ‘추진력’이라는 말로 바꾸면 안 될까? ‘로드맵’을 ‘이행 계획표’혹은 ‘세부 실행 지침’이라는 말로 바꿔 사용하면 안 되는 것일까?

 시내를 걷다보면 외국어 간판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드림스타트 센터(아동복지 센터),휴먼스빌(아파트), 네이처 리퍼블릭(화장품 판매점)...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으로 창제되었다는 우리네 한글로 충분히 이름 지을 수 있음에도 외국어 이름을 선호하는 현상이 점점 강해지고 있는 이 때에 통일을 대비해야 하는 우리는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할 때라고생각한다. 문재인 대통령께서 가을에 북한을 방문하신다고 한다. 유머 있게 이런 말씀을북측에 전달해보시면 어떨까? “ 김정은 위원장의 용단으로 시간대를 통일시켰으니 이제는 언어 통일 작업을 해나가자고 제가 제의해봅니다. 우리가 세종대왕께 큰 선물 하나드려봅시다.”

 기차 타고 평양으로 가서 냉면 한 그릇 먹고 대동강에서 꽃구경할 날이 멀지 않았다 생각하니 지금부터 설렌다. 차디찬 겨울뿐이었던 한반도에 따뜻한 봄이 왔다. 이 봄이 봄에서 끝나지 않고 열매를 맺는 여름과 수확이 있는 가을로 이어질 수 있도록 우리 모두최선을 다하자.

<안상현 / 법사랑 전주지역연합회 보호관찰분과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