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소방 구급대원들이 지난 2일 밤 환자를 후송하고 있다. / 이재상 기자

"긴급 환자 발생! 긴급 환자 발생! ○○로 출동 바랍니다." 

요란한 경보음 소리와 함께 출동 지령이 떨어지자 윤호권 소방교(35)와 이상국 소방사(29)가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건물에 쓰러져 있는 한 40대 남성이 호흡이 약해지고 있다는 이웃 주민의 신고였다. "이 기자도 같이 가볼까요." 119 구급차에 몸을 던져넣고 사이렌과 함께 소방서를 나섰다. 사회복무요원 1명도 따라나섰다. 

신고 3분만인 오후 7시28분에 현장에 도착했다. 환자는 의식이 분명하지 않아 보였다. 다행히 구급대에 앞서 근처 동네 의원에 있던 의사가 급하게 나와 도움을 준 덕에 위급한 상황은 넘긴 듯했다. 곧바로 구급차에 태워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후송 도중 의식이 다소 돌아온 환자가 갑자기 욕설과 함께 화를 내기 시작했다. 자신의 상황이 어리둥절한 듯 "대체 내가 왜 이렇게 됐느냐"고 따졌다. "조금만 있으면 병원에 도착합니다. 괜찮으실 거예요." 좁은 구급차 뒤편에 환자와 함께 동승한 이상국 소방사가 자주 해본 솜씨로 환자를 달랬다.

인근 병원의 응급실에 환자를 인계하고서야 한숨을 돌리고 시계를 보니 오후 7시40분이었다. 

"이 정도면 정말 양호한 편이에요. 술에 취한 분들은 욕설은 기본이죠. 좁은 구급차 공간에서 주먹을 막 휘두르면 꼼짝 없이 당하기 십상이어서 긴장을 풀 수 없습니다." 

이 소방사는 "술 취한 사람이 갑자기 깨어나서 난동을 부릴 수 있어 팔을 꽉 붙잡고 가야 한다"고 나름의 대처법을 귀띔했다. 

실제 같은 날 오전 구급출동에선 위험한 순간을 마주쳤다고 했다. 편의점 앞에서 20대 청년이 술에 취해 유리병을 깨뜨려 자해 소동을 벌이고 있다는 신고였다. 경찰과 함께 주취자를 구급차에 태우려고 했지만 그는 피를 흘리면서도 강하게 저항하며 폭력을 휘둘러 구급대원들이 진땀을 흘려야 했다. 

이런 일이 잦다 보니 큰 불상사로 이어지는 경우도 생긴다. 이달 1일 뇌출혈 증세로 치료받다 끝내 순직한 전북 익산시 119 소방구급대원 강연희 소방경(51·여)은 한 달 전 40대 취객을 후송하다 머리 등을 여러 차례 폭행당한 뒤 이상 증세를 호소해 왔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리고 스산했던 지난 2일 오후 7시부터 새벽 1시까지 경기 지역의 한 119안전센터 소방구급대원들과 동행한 것은, 실제 현장에서 구급대원들의 처한 현실을 보고,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였다. 

6시간 동안 5건의 구급출동이 있었다. 그나마 궂은 날씨 탓인지 출동이 적은 편이라고 했다. 노래방에서 과음에 따른 어지러움을 호소해 병원에 후송하기도 하고, 50대 여성의 자살 소동으로 현장에 급하게 쫓아가기도 했다. 

낮에도 주취자 관련 신고가 3건이나 있었다. 이 소방사는 "주취자와 관련된 신고는 하루도 끊이질 않는다"고 했다. 

소방 구급차에 안에 붙어 있는 문구./

주취객에 의한 폭언이나 폭행에 항상 노출돼 있다 보니 구급대원들이 겪는 정신적 스트레스가 적지 않다. 윤 소방교는 최근 벌어졌던 일을 떠올리면 지금도 아찔하다. 

"40대 여성 취객이었어요. 쓰러져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구조를 하려는데 갑자기 '어딜 만지느냐'부터 시작해 오만 욕을 다 들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멘붕'(멘탈 붕괴)'에 빠져요."

구급차 뒤편에 타보니 환자를 제외하고 겨우 2명 정도 자리만 나온다. 좁은 골목을 다녀야 해서 차 크기에 한계가 있고, 장비도 많이 싣고 다녀야 해서 공간이 좁다. 이런 공간에서 주취자와 딱 붙어 가다 보니 갑작스러운 폭행에 취약하다. 

폭력적인 행태를 보이는 환자의 경우 경찰이 동승하는 경우도 있지만 여러 현실적인 한계로 구급대원들이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다. 

구급차 안에는 '정당한 사유 없이 구조, 구급활동을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지만 주취객에게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소방당국은 모든 구급차에 CCTV를 설치하고, 구급대원들에게 액션캠(웨어러블캠)을 설치했지만 근본적인 대안이 되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윤 소방교는 "가끔 스스로 119에 신고해 놓고 병원 이송을 거부하면서 욕하고 때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소방청에 따르면 2015년부터 최근 3년 간 총 564건의 구급대원 폭행사건이 발생했다. 

소방청은 3일 "구급대원을 폭행하는 행위는 사람에 대한 폭력행위를 넘어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중대한 범죄라는 사회적 인식이 확립돼야 한다"면서 "이를 예방하기 위한 강력한 처벌과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 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