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무주군 무풍면에서 자전거여행을 했다. 무풍면은 전북의 최동북단에 위치하고 있다. 전주에서 승용차로 2시간은 족히 걸리는 곳에 있다.

무풍은 행정구역상 전북에 속한 지역이지만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는 경상도 쪽에 가까운 곳 아닌가 싶다.

무풍은 백두대간에 의해 경상도와 경계를 이루고 있지만 삼봉산에서 흘러내린 산줄기가 라제통문 쪽으로 이어지면서 병풍을 치듯 하고 있다. 지방도 이상 도로의 경우 무주 설천 쪽으로는 라제통문을 통과하는 국도 30호선이 있을 뿐이다.

박장우 전북포스트 주필

반면 경북 김천이나 경남 거창 쪽으로는 지방도와 국도가 세 개나 연결돼 있고, 지역주민들의 생활권도 김천이나 거창에 속할 정도로 왕래가 빈번하다. 학생들도 대부분 김천 등지로 진학하며 주민들도 경상도 말씨를 쓴다.

역사적으로도 무풍은 신라의 영토였다. 신라와 백제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는 라제통문이 이를 증명한다. 물론 라제통문은 일제시대 신작로를 개설하면서 우마차가 통행할 수 있도록 굴을 뚫었다고 한다. 본래 이곳에는 설천과 무풍을 오가는 사람들이 넘나들던 고개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삼국이 통일될 당시 무풍현은 지금의 무주읍에 위치해 있던 주계현보다 모든 면에서 비중이 더 컸던 것으로 전해진다. 전주와 나주를 따서 전라도라 불렀듯 무주군도 무풍의 무자와 주계의 주자에서 비롯된 이름이라 한다.

무풍이 전북 쪽과 얼마나 격리된 곳인가 하는 점은 근래 무풍저수지에서 설천 삼거 쪽으로 개설된 산악도로에서 피부로 확인할 수 있다. 예전 임도를 차량이 통행할 수 있도록 2차선으로 확장한 것인데 경사가 최소 10도 이상으로 무척 가파르다.

무풍에서 설천의 구천동을 가는데 라제통문이나 경남 고제로 돌아가려면 적게는 30분 이상, 많게는 1시간 가까이 소요되지만 산악도로로 넘어 가면 10분이면 충분하다. 다만 이 산악도로는 11월15일부터 다음해 3월15일까지는 결빙되는 경우가 많아 차량통행이 금지된다. 정상적인 도로가 아닌 셈이다.

무풍에 가면 역사는 승자의 몫이라는 사실을 곳곳에서 절감하게 된다. 전북과 경상도를 가르는 백두대간 곳곳에는 부항령, 덕산재, 소사재 등 고개가 많은데 대부분 인근의 경상도 지역 지명과 일치한다. 대덕산 아래에는 대덕면이 있다.

그중 소사재는 결정판 같다. 전북과 경상도 경계는 대부분 백두대간에 위치하고 있는데 소사재는 물론 그 아래 전북 쪽 소사마을이나 지경마을도 행정구역이 경남 거창이다. 도계는 소사재 한참 아래 초점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따라 지나간다.

아마 행정구역을 결정할 때 지역주민들이 경상도 쪽으로 포함되기를 강력 희망했던지 아니면 어떤 유력 인사가 영향력을 행사했든지 한 모양이다. 전북을 향한 산기슭에는 경남 거창이란 이름이 아주 큼직하게 새겨져 있다.

무풍은 풍수지리설에 따라 전쟁, 전염병, 흉년이 없는 피난하기 알맞은 땅 열 곳, 즉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로 꼽히던 곳이다.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같은 큰 전쟁이 일어났을 때 이곳으로 피난 왔던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지금도 무풍에서는 무풍승지(勝地)라는 말을 지역브랜드처럼 자랑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또한 무풍에는 임금이 유사시 피난하기 위해 만든 명례궁이라는 행궁(行宮)이 있었다. 조선말 민비의 친척인 민병석이 건립한 궁실인데 난세의 피난처로 삼기 위해 지은 것으로 알려지는데 지금은 흔적도 찾기 어렵게 됐다.

무풍은 전북 도민들에게는 먼 거리에 있는 만큼 마음도 멀게 느껴지는 고장 아닐까 싶다. 물론 무풍지역 주민들에 있어서도 전북이 살갑지 않을 듯도 싶고 말이다.

라제통문을 비롯한 33경을 자랑하는 무주구천동은 전북 도민들에게 사랑받는 관광명소다. 그 라제통문 그 너머에는 전북 속 경상도, 무주 무풍이 자리하고 있다.

무주 구천동이나 태권도공원을 방문하는 도민들이라면 라제통문 너머 무풍을 한번 씩 찾아봤으면 어떨까 싶다. 라제통문에서 10분이면 무풍 소재지에 도착할 수 있다.

많은 도민들이 무풍 주민들과 접촉하게 된다면 그들에게 전북인으로서 자긍심도 더욱 북돋워 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해서다. / 박장우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