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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DNA - 정지월
Jiworl Seok 편집위원  |  jbpost@hanmae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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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4.30  00: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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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으로 만경강 대비둑이 길게 달리고, 앞으로는 십리도 넘게 떨어져 서 있는 장승같은 소나무 두그루가 머나먼 지평선의 소실점이 되던 김제군 백산면 마전리의 외갓집은 항상 너무도 고즈넉해서 어린 내겐 감당하기 힘든 외로움을 만들어 줬다.

서울 사람이 보기엔 다 시골이겠지만, 그래도 전기도 있고 TV도 있어 밤이 무섭지도, 심심치도 않던 김제읍 요촌리에 비하면, 전기도 없이 호롱불에 라디오뿐이던 외갓집은 말그대로 적막강산이었다.(1973-4년쯤 전기가 들어왔던듯 하다.)

거기에 말씀 한마디, 눈 빛 한번 안주시는 외할아버지는 외갓집의 분위기를 더욱 장중하게 만드셨다.

 

   
정지월 전북포스트 애틀랜타 편집위원

일년에 두 번, 여름 겨울방학을 맞으면 엄마는 나를 외갓집에 데려다 놓고 하루만 주무시곤 가셨다가 일주일쯤 뒤에 데리러 오셨다.

난 엄마가 떠나고 나면 날마다 해질녘에 마루에 걸터앉아 울곤 했다. 그 시간은 대게 볏짚을 태워 가마솥에 저녁밥을 할 시간이어서, 내게 있어 해질 무렵과 볏짚이나 나무가 타는 냄새는 지금까지도 슬픔의 모티브가 된다. 

 

우리 엄마는 무남독녀시다. 태생적으로 무남독녀가 아니라 9남매를 뒀으나 다들 어릴 때 이런 저런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하나 있던 오빠마저 일제 때 징병을 갔다 간신히 살아 돌아 오셔서, 6.25 때는 하나 뿐인 아들이 다시 징집될까 두려워 피신 보냈다가 영영 돌아오지 않아 그렇게 무남독녀가 돼버렸다. 

같이 피신했던 동네 청년이 혼자 고향으로 돌아오던 날, 할아버지는 슬픔과 절망으로 벽에 머리를 짖찧으시다 한쪽 고막이 터져 청각이 어두워지시고, 서서히 말씀을 거두셨단다. 그러니 할아버지의 것은 이유가 있는 침묵이었다. 

외할머니와는 달리 살아 생전 한번도 표현은 안하셨지만 외할아버지도 아마 돌아가실 때까지 생사를 확인할수 없었던 외삼촌을 기다리시다 가셨을 것이다. 난 1983년 이산가족 찾기를 방송할때 행여 외삼촌이 나오실까 가슴 졸이며 눈물로 하루도 빼지 않고 시청하시던 할머니의 모습을 기억한다.

끝내 외삼촌의 행방은 커녕 생사 여부 조차 알 지 못한 채 두 분 모두 세상을 떠나셨지만, 가슴 아픈 가족사는 우리 엄마와 외삼촌의 유일한 혈육이었던 당시 세 살의 사촌언니의 인생에 커다란 흉터를 남겼다. 

몇 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마냥 기다리게 할 수 없는 시부모는 며느리를 친정으로 돌려보내 재가를 하게 해, 사촌언니는 부모없이 조부모의 손에서 자라야 했고, 우리 엄마는 팔자에 있는 무남독녀가 되어 살아 남은 자의 슬픔을 견뎌내야만 했다. 

또 대도 끊기고, 가임성도 끊긴 불쌍한 우리 할머니는 대를 잇기 위해 시앗을 봐야 했으며, 아들로 태어나지 못한 어린 이모는 눈치꾸러기로 커야 했을 것이다. 

저마다의 사연과 고유한 슬픔으로 항상 커다란 물방울안에 갇혀 있는 듯하던 외갓집의 먹먹한 초상은 슬픔의 DNA로 내게도 유전되어 있으리라...

 

남북 정상회담으로 두 지도자가 손을 잡고 서로의 저지선을 넘나드는 사진을 보며, 난 애닯게 살다 가신 내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단 한번도 엄마를 찾으며 울지 않았다던 사촌 언니가 생각나 울었다.

직접 6.25나 분단의 아픔을 겪지 않았다 해도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는 혈관에 자식을, 형제를, 배우자와 부모를 잃은 통한의 DNA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언제나 꿈꿔 왔으나 행여 이뤄지리라 믿지는 않았던 이 소식이 더욱 반갑다. 그리고 아쉽다. 조금 더 일찍이 이리 되었다면 평생 가슴에 품었던 가족을 보고 떠난 이들이 좀 더 많았을 텐데 말이다.

국내외로 반신 반의하는 의견들이 분분한 모양이나, 희대의 쇼로 끝나버리기엔 감정소모비용이 너무 크지 않을까? 제발 이 남북회담을 단초로 종전, 비핵이 결단코 완성되기를 빈다. 

문대통령이 타던, 트럼프가 타던 누가 타도 좋으니 노벨 평화상감의 결말을 기대한다. / 정지월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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