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특집 > JBpost 신년기획
18. 전주를 사색하다 - 한옥은 음양의 조화로 대동세상을 꿈꾼다<신년기획>전라도 정도(定都) 천년...'동방의 등불'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강찬구 기자  |  phil620@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4.06  16:25:34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목수가 심먹을 놓고 톱질하고 대패질을 한다. 매화꽃 날리는 맑고 푸른 봄 하늘도 곧추선 끌날에 베일 듯하다. 들숨에 당기고 날숨에 민다. 들고 나는 숨이 음양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목수는 이른 새벽, 아침 이슬에 대팻날과 끌날을 고운 숯돌에 갈았을 터이다.

 

   
완판문화관 한옥의 선 후림과 조로 처마앙곡과 처마안각이 확연하다. 팔작지붕이다.

날을 세우는 시간만큼은 무위에 이른다. 온갖 인위가 만든 세상사 질곡을 벗는다. 조금의 잡티가 생겨도 나무의 연한 속살에 생채기를 낸다. 날이 너무 서면 잘 깎이나 금세 무뎌진다. 자신의 일 맵씨와 나무의 성질에 맞게 잘 맞춰야 한다. 날머리가 새하얗게 빛나면 손가락을 슬쩍 얹는다. 직관으로 알아챈다. 자칫하면 깊이 베인다.

목수들이 각각의 치수로 치목(나무를 설계대로 자르고 깎고 홈을 내고 대패질 하는 일)을 해낸다. 치목을 하면 드잡이(조공)들이 바심질(마무리 하기)을 하고, 도편수는 암장부(나무 촉이 끼워져 들어가는 홈)와 수장부(나무 촉)의 궁합을 가늠해본다.

초석 위에 기둥을 올린다. 기둥 부재 아래 단면에 홈을 파고 소금과 숯가루를 넣는다. 습기와 벌레로부터 기둥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나무는 원래의 자연 그대로 치목한다. 자연 상태에서 위는 위로 아래는 아래로 남쪽은 남쪽으로 가게 치목을 한다. 거슬리지 않고 순응해야 나무들이 변형을 덜 한다.

 

   
오목대에서 바라본 한옥의 지붕선들.

초석 면과 맞추어서 그렝이질(부재와 부재를 정밀하게 맞추기 위해 나무를 다듬는 일)로 기둥 밑둥을 초석 면과 종이 한 장 들어갈 틈도 없이 밀착시킨다. 다림보기(추를 위에서 아래로 내린 실과 기둥의 간격을 검사하는 일)로 기둥의 수직도를 확인한다.

기둥은 좌우로는 하방, 중방, 창방, 장여, 도리를 받고 앞뒤로는 보를 받는다. 장여, 보, 도리는 기둥 위에서 사개맞춤을 하고 하방, 중방, 창방은 기둥에 암장부를 쌍홈으로 파고 하방, 중방, 창방은 수장부를 내어 맞춘다. 기둥 윗면에 얹히는 부재들의 구조적 안정을 위해 보 방향과 같이 보아지를 건다.

도리는 보 위에서 걸린다. 앞에서 보아 기둥의 제일 높은 곳에서부터 좌우로 도리, 장여, 소로, 창방이 걸린다. 방에서 마루를 지나 기둥에 걸리는 부재가 보이다. 도리는 보 위에서 걸린다. 부재와 부재가 엮어지는 장부들의 종류인 반턱, 왕지, 주먹장, 숭어턱등은 일반인들은 몰라도 되겠다. 엮어지면 보이지 않는다.

 

   
한옥의 부재 명칭들.

 

   
추녀쪽의 서까래를 거는 방법들.

사내들이 일하는 현장에서 한옥의 부재들을 엮는 일은 토속적인 음담패설이 어지럽다. 부재가 음양의 이치로 다듬어졌으니 그럴 만하다. 밑에서 받으면 받을장이요, 위에서 덮으면 덮을장 또는 엎을장이다. 암장부 구멍으로 수장부 촉이 들어가야 한다.

잘 안 맞으면 “새 각시 다루듯이 살살 밀어 넣어야지 삼 년 굶은 홀애비 마냥 우격다짐하느냐.”고 한다. “운우지정이 요란하다.”, “방망이(수장부)가 너무 섰다. 힘 좀 빼라.”는 등 입담으로 고되고 위험한 조립을 하다보면 뼈대가 선다.

대들보 위에 판대공을 세우고 상도리 중도리를 건다. 그 위에 서까래가 걸린다. 서까래를 걸기 전에 지유가 한옥의 선을 결정한다. 제일로 어렵고 한옥의 미를 결정하는 순간이다.

 

   
개량형 기와로 암키와 숫키와가 없다. 용마루 선은 주변과 어울려 잘 잡혔다.

한옥 용마루의 선은 학이 물 가운데를 부드럽게 내리다가는 슬며시 창공으로 오르는 선이다. 자연이 주는 부드러운 현수선이다. 그 선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선이 아니다. 도편수가 용마루 선을 잡지 않는다. 한옥 건축의 총우두머리인 지유(指諭)가 잡는다. 또는 집안의 가장 큰 어른이 잡는다.

지유 밑에 실제 일의 우두머리인 도편수, 그 밑에 부편수 일명 먹잡이, 그 다음은 톱잡이, 그 밑에 마무리 다듬기인 바심질과 허드렛일을 하는 드잡이 등이 일을 한다. 지유는 기술자가 아니라 집의 미학자이다. 지유가 잘 해야 집이 개성적이고 아름답다. 성리학의 세계에서는 아마도 학식이 높은 유학자가 지유를 맡았으리라.

 

   
지붕의 망와 연꽃이 새겨져 있다.

멀찍이 떨어져서 목수들이 용마루 좌우에서 늘어뜨린 실의 선을 바라본다. 집의 규모와 주변의 지세와 풍수, 그리고 자신의 뜻을 담기에 가장 적합한 현수선을 찾는다. 가운데가 중력으로 오목하게 내려간다. 처마 끝의 선도 마찬가지이다. 추녀와 추녀를 연결하는 나무를 걸고 그 가운데에 돌을 메달아 나무가 중력으로 아래로 휘게 한다.

처마 끝선은 통상 초석 상단에서 30도 각으로 올라간 선과 맞춘다. 이 선이 계절별 태양의 남중고도와 가장 걸맞는다. 이 작업이 평고대를 거는 일이다. 평고대 아래로 서까래가 붙는다. 서까래에 별도로 출목을 대면 이게 덧서까래(부연婦椽)인데 겹처마를 만든다. 한자가 붙일 부(附)가 아니고 여자 부, 며느리 부(婦)이다. 덧서까래는 평고대에 얹혀져 선을 만든다.

 

   
기둥, 보아지, 퇴보, 도리, 서까래와 시렁.

부연이나 서까래의 끝부분을 한복 소매처럼 살을 걷어내는 소매걷이를 한다. 소매걷이 시점은 말구에서 3분의 1지점 정도부터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렇게 하면 둔탁하게 보이지 않고 날씬하고 힘이 있어 보인다. 여인네의 저고리 소매는 단아하되 기품이 있다. 경망하지 않고 조용한 난 잎처럼 슬그머니 하늘로 오른다.

용마루와 처마의 곡선을 소매걷이가 마무리한다. 처마앙곡은 추녀 쪽으로 갈수록 하늘로 들려 올려지는 선이고, 처마안곡은 추녀 쪽으로 갈수록 서까래를 밖으로 더 내미는 곡선이다. 처마안곡은 서까래의 길이가 정확히 같으면 착시로 인해 추녀쪽이 들어가 보여서 이를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좌우의 선의 휘어짐은 후림, 앞뒤로 휘어짐은 조로라 하는데 어느 하나라도 삐끗하면 조형미가 사라져버리고 만다. 추녀는 도리 위로 걸린다. 추녀의 각과 길이가 한옥 선의 미를 가름한다. 추녀가 한옥 건축의 제일 어려운 대목이다.

   
한옥의 부분 명칭.

 

   
선자연 서까래.

지붕의 용마루보다 추녀가 좌우의 밖으로 나가는데 이 삼각형 부위에 서까래를 거는 기법은 세 가지이다. 합죽선처럼 처마 반대쪽의 서까래와 서까래가 얇게 깎이어 맞대지면 선자연, 약간의 각을 두어 설치하되 서까래를 깎지 않으면 마족연, 일정한 간격으로 설치하면 평연이다.

선자연 깎기는 지금은 컴퓨터에서 캐드(CAD)로 계산해 전개도를 그리지만 전통에서는 일일이 계산해야 한다. 목수가 천대받던 옛날에 글자도 모르는 이들이 선자연 치목 치수를 계산해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캐드 덕택으로 평범한 한옥이면 한 일 년 열심히 공부하면 누구나 다 알게 된다.

손의 숙련도는 다른 문제이다. 옛날에는 도제식으로 배우는 터라 도편수 눈에 들어야 하고, 눈에 들어도 십여 년은 족히 해야 치목의 여러 원리와 방식을 안다. 지금은 자신이 노력하면 금세 배울 수 있다. 알되 철학적으로 깊이 아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끝 부분을 깎아내 날렵하게 한 소매걷이 서까래.

한옥은 무엇이며 그 조성원리는 무엇일까?  한옥의 조형미는 어떤 생각을 표현한 것일까?

먼저 법적인 정의를 살펴보면 이렇다.「한옥 등 건축자산의 진흥에 관한 법률」은 한옥을 “주요구조가 기둥·보 및 한식지붕틀로 된 목구조로서 우리나라 전통양식이 반영된 건축물 및 그 부속건축물”으로 정의하고 있다. “전통양식”, “한식지붕틀” 등의 추상적인 표현을 덧붙여 시대 변화에 따른 신한옥을 수용할 수 있게 하였다. 다분히 기능적인 정의이다.

같은 예술이지만 시가 소설과 다르듯이 한옥이 한옥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선조들은 음양오행을 말해왔다. 한옥은 음양의 조화이다. 공자의 유학을 앞날의 길흉화복을 예언하는 도참설(圖讖設)과 결합하여 유교로 만든 동중서는 인류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데 바로 양존음비(陽尊陰卑)이다. “악(惡)의 부류는 모두 음(陰)이 되며, 선(善)의 부류는 양(陽)이 된다. 양은 덕(德)이 되며, 음은 형벌이 된다.(춘추번로(春秋繁露)/권11/왕도통3(王道通) - 악지속진위음惡之屬盡爲陰 선지속진위양善之屬盡爲陽 양위덕 음위형 陽爲德 陰爲刑)

그러니 동중서의 유교는 잊어버리고 유학으로 생각해보자. 음양을 전기의 -극과 +극으로 생각하자. 변증법의 정, 반으로 여겨도 좋다. 기둥, 보, 도리 등의 부재들은 암장부, 수장부, 받을장, 엎을장으로 모두 음양으로 이루어지고 서로 엮인다. 전통 한옥 기와는 암키와를 숫키와가 덮는다. 처마로 와서는 평고대 위에서 막새를 쓴다. 수막새, 암막새라고 한다.

 

   
완판문화관의 솟을대문 용마루, 망와, 막새, 암키와, 숫키와 등이 음양으로 어우러졌다.

개량형 기와(일본식 기와)는 암수가 없이 턱을 좌우상하로 걸쳐서 간다. 서양식 기와도 그렇다. 개량을 할 수는 있지만 음양의 이치를 없애는 것은 본디의 우리 생각이 아니다. 기능만 있을 뿐이다. 하여 음양의 조화가 사라진 개량형 기와는 한옥 지붕이 아니라고 본다. 지붕을 보면서 음양의 평등과 암수로 서로 다르되 한 지붕으로 어우러지는 동이상보의 대동을 생각하는 맛이 없다.

지붕의 면과 면이 만나는 곳은 착고 기와를 덮고 그 위에 암키와를 뒤집어 몇 장 얹힌다. 마루의 끝은 망와를 쓴다. 요즈음은 망와와 막새 문양에 무궁화가 흔하다. 망와의 문양은 원래 별도로 주문해서 쓴다. 부처님을 새기든 귀신 잡는 처용을 새기든, 고졸한 연꽃을 새기든 가문의 수호자나 정신을 나타낸다. 나라꽃이긴 하지만 무궁화 망와는 볼수록 재미가 없다.

한옥에서 초가의 선은 뒷산의 모양을 닮았고 기와의 선은 양끝을 잡은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늘어진 새끼줄의 선을 표현한다. 처마는 후림과 조로를 두고 용마루의 가운데를 처지게 하여 자연스러운 형태를 나타낸다.

 

   
필자가 지은 익산의 개량형 한식 중목구조 골조이다.

팔작지붕은 아홉의 곡선을 가졌다. 용마루의 곡선, 좌우지붕선, 앞뒤 지붕선이다. 위에서 아래로의 경사도 곡선을 가졌다. 그 선들은 날아갈 듯 말 듯 하다. 버선코 같고 연분홍 저고리의 소매선과 같다. 그 선을 두고 누군가 은근함과 끈기라 하나 그리 보지 않는다. 그 보다는 지향(志向)으로 오르고, 오르되 절제하는 조화이다.

기와집의 선은 하늘로 오목하고 초가의 선은 땅으로 오목하다. 양민의 삶이야 땅을 품어야 생산하는 이치이니 아래로 오목하다. 하늘과 땅의 보편적인 리(理)를 담되 지나치지 않게 자연스러운 곡선으로 담는다. 보편적 이치인 리를 기둥, 보, 서까래, 암키와, 숫키와 등의 기(氣)를 통해 드러낸다. 기(氣)를 잊지 않으니 헛된 명분에 빠지지 않는다. 뜻이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야 한다.

이 선들은 마당에서의 온갖 행동으로 드러난다. 음식을 하고 타작을 하며 놀이를 하고 잔치를 한다. 마당에서는 삶이 일어난다. 마루는 마당과 내실을 이어주고 내밀한 방에서는 뜻을 가다듬고 휴식을 한다. 마당에서 어우러지되 서로서로 다른 공간으로 간다.

안채, 사랑채, 별채 등의 채 나눔이 한옥의 원리이다. 마루는 여러 사람이 좌우의 수평으로 나와도 감당한다. 서양식 현관은 앞뒤로 사람이 줄을 서는 수직 문화이다. 마루는 수평의 문화이자 자연과 합일하는 문화이다.

 

   
상량문을 쓰는 집주인 소설가 정도상 선생과 필자인 강주영 편집위원.

전통 한국식 조형은 화단이라는 별도의 경계를 가진 조형을 하지 않는다. 화단은 일본 문화이다. 일본식이라 하여 배척하는 것이 아니다. 그 차이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 조형은 마당에서의 공간적 조형의 흑과 백, 즉 음양의 조화를 이루어 한다. 지나치면 안 되고 너무 모자라도 안 된다. 지나침과 모자람은 나무 종류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선비의 마음에 드는 소나무 한그루나 매화 한그루로 충분할 때가 있다. 여기에 여인네들이 장독대 밑에 봉숭아나 채송화를 가꾸도 한다. 일본식 화단은 온갖 화초를 몽땅 우그려 넣는다. 절제된 조화와 공간의 너그러움을 보기가 힘들다. 지나침이 모자람만 못 하다. 
 
한옥마을에 봄이 깊어진다. 봄이 소매걷이한 처마 서까래를 타고 가는 듯 하다. 어디서인가 환청이 인다. 대금 가락이 매화꽃에 서린다. 팔작 추녀에 꽃심이 선자연으로 펼쳐진다.  황진이가 쓴 시를 되뇌인다. “매화는 피리에 서려 향기롭고 / 내일 아침 서로 이별한 뒤에 / 정은 푸른 물결과 더불어 깊어지리”  봄빛이 내려서 그윽한데 아득하고 아찔해진다. / 강주영 편집위원

강찬구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560-022)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동성당길 13. 호운빌딩 3층  |  대표전화 : 063)231-6502  |  등록번호 : 전라북도 아 00076  |  발행인·편집인 : 강찬구
등록 및 발행일 : 2014년 8월 7일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현영
Copyright © 2018 전북포스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