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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추억으로 가는 길목 -전주 화산공원
강찬구 기자  |  phil6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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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31  06: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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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완산칠봉에서 뻗어내려 전주천 서편으로 내려서는 화산공원. 롯데아파트 뒤편으로 올라 능선을 따라 간 뒤 예수병원을 끼고 돌아내려 오는 길이다. 돌아오는 길은 전주천 고수부지 산책로.

화산공원은 특히 많은 학교를 품고 있다. 신흥고와 근영여고, 예수간호대학, 기전대학이 이 산에 기대고 있다. 기전여중고는 품안을 떠나 서부 신시가지에 터를 잡았다. 시내를 오가며 바라만 보던 야트막한 동네 뒷산, 그 곳에서 얘기치 못했던 추억을 만난다. 

 

   
전주 화산공원 오르막. 

롯데아파트 뒤편 화산으로 오르는 길, 경사가 만만치 않다. 생활 공간 바로 옆이라 친숙하지만 몸으로 오르기는 처음이다. 팍팍한 계단이 한없이 이어진다. 한참을 올라서니 아파트 옥상이 바로 옆. 몸에 서서히 열이 오르고, 허벅지가 뻐근하다. 앞길을 보니 더 높은 곳은 없다. 오늘 오르막은 여기서 끝.

 

양편으로 전주 시내가 펼쳐져 있다. 왼편으로는 전주 구도심, 오른편은 서부신시가지다. 구도심 저편으로는 기린봉과 승암산이 바람을 막아준다. 뻗어 내린 능선을 거슬러 완산칠봉으로 가는 길. 아스라한 추억이 몰려온다.

구도심쪽으로 동국해성아파트가 보인다. 이곳은 전주 해성고 자리다. 원래 천주교 순교지로 치명자탑이 있었다. 그 순교 터에 학교를 세운 것이다.

 

   
화산공원에서 보이는 전주시내와 멀리 승암산. 

나는 격동의 70년말 이 학교를 다녔다. ‘박대통령 유고’라는 호외가 길거리에 날리던 그 날은 유난히도 을씨년스러웠다. 어두침침하고 싸늘하던 등굣길. 그 해 겨울은 끝이 없었다. 스크럼을 짜고 거리로 나서던 학생들, 그리고 필사적으로 막아서던 선생님들의 절규... 하늘에는 헬리콥터 소리가 요란했다.

당시만 해도 학교 주변은 거주지가 아니었다. 배추밭이 많았다. 변변치 않던 시절이라 오줌을 발효시켜 거름으로 썼다. 종종 암모니아 독한 냄새, 그 지린내가 코를 찔렀다. 더운 날에도 문을 닫아놓는 바람에 고생들이 많았다.

지금은 낡았지만 진북동 동양아파트는 당시 전주 최고의 아파트였다. ‘수도꼭지만 틀면 뜨거운 물이 펑펑 나오는’ 것이 자랑이던 시절이다. 40-50대들에게는 동양아파트에 대한 아련한 부러움이 있다. 지금은 낡은 아파트로 밀려 있으니, 누구에게나 전성기는 있었을 터...

 

   
화산공원 체육 및 휴식 시설. 

전주천도 거의 자연 상태의 하천이었다. 비가 조금만 와도 전주천의 물이 넘쳐 지대가 낮은 어은골 일대는 물바다가 됐다. 그 때도 콘크리트 제방이 있긴 했지만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천변도로는 포장도 안 돼 있었다.

친구들이랑 고민을 해결한답시고, ‘때깔’만 양주인 ‘캡틴큐’를 사들고 천변으로 나오곤 했다. 그 독한 술을 한모금씩 털어 넣고 깜냥에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다 보면 천변을 지나는 버스가 산통을 깼다. 눈앞을 가려버리는 그 무심한 흙먼지라니... 버스 꽁무니에 대고 '감자질'을 해 본들 먼지는 쉬 걷히지 않았다.

전주의 메인 상권으로 꼽히는 서신동은 그 때 '생촌'이었다. 들판 저~ 너머에 있는 시골마을이었다. 비가 오기라도 하는 날이면 서신동 사는 친구들은 흙강아지가 돼서 학교에 왔다. 논길을 가로질러 학교에 다녔다. 학교에서는 촌놈 취급을 받았다.

지금은 롯데백화점과 이마트가 늘어선 들길을 따라, 복사꽃 화사하던 서곡 언덕을 지나, 황방산으로 소풍을 가곤 했다. 그 산에서 노래자랑도 하고, 보물찾기도 하고, 선생님들 몰래 소주도 한잔씩 하면서 어른 흉내를 냈다.

 

   
전주 서신동 주변 고수부지 산책로.

동창들끼리 만나면 지금도 그때 얘기를 하면서 웃는다. 빼놓지 않고 나오는 소리가 서신동 땅 얘기다. ‘그때 고등학교, 대학교 안다니고 학비로 서신동에 땅 사놨으면...’

그때는 어찌 알았겠는가. 상전이 벽해가 될 것이라는 것을... 서신동이 저렇게 변한 걸 보면 우리의 남은 시간도 어떻게 흘러갈지 모른다. 언 땅에서 새싹이 돋고, 고목나무에도 꽃이 핀다는 것을... 절망의 늪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

묵묵히 걸으면 추억에 젖다보니 적당히 넓은 공터가 나온다. 아마도 도토리골 뒤편이 아닐까 싶다. 정수리에 생긴 원형탈모처럼 맨 살이 드러난 쉼터. 마실길의 중간쯤이면 기다려지는 것이 있다. 친구들이 가져 온 새참. 적당한 운동으로 허기가 올라오고, 넘치지 않으니 귀하게 여기고, 함께 나눠먹게 되니 더할 맛이 없다. 게다가 소중한 친구들을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준비했을 터니, 사랑까지 한 가득.

 

   
화산공원은 전주 시내에 있어 산책하기에 적당하다. 

예수병원 뒤편을 돌아 전주천으로 내려온다. 고수부지 산책로를 따라 원점으로 돌아가는 길. 전주천 버들개지는 꽃을 피웠다. 또랑또랑 물소리 겨울을 밀어내고, 먼 길 아지랑이라도 피어나는 듯 현기증이 인다. 봄이다. 봄.

마실길은 치유다. 생활 속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부려놓는 곳이다. 아무렇게나, 그저 몸이 가는 대로... 한달에 한번씩 만나 별다른 대화도 없이 싱겁게 인사 나누고 걷는 게 전부다. 요란한 인사도, 왁자지껄 뒤풀이도 없다.

세상속의 짐과 통속적 권위를 벗어놓고 자연인으로 만나는 자리. 서로 넘어서지 않는 배려가 마실길을 존속하게 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서로간의 정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애정과 배려는 넘치고도 남는다.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는 전주 화산공원 산책로. 

나는 마실길을 통해 지금은 아스라해진 공동체 기능의 회복을 주목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파편화되면서 잃어버린 인간적인 관계. 아플 때 아프다고 말 할 수 있는 관계. 그 허물없는 관계가 SNS와 마실길을 통해 복원되고 있다.

아프면 아프다고 하소연하고, 서로 토닥토닥 격려하는 사이. 요즘 세상에 그런 귀한 인연이 어디 있는가? 트레킹 치고 힐링 아닌 것이 있으랴마는 ‘마실길’은 정이 듬뿍 담긴 한국적 트레킹이다. / 강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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