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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봄빛 둥둥 뜨는 섬진강에서 다시 그리움으로 - 경남 하동
강주영 편집위원  |  kjyn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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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21  12: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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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비쉼터 부근에서 찍은 섬진강, 달래강이라고도 부른다. / 강주영

봄빛이 둥둥 뜨는 날이었다. 섬진강길을 걸었다. 화개장터에서 강을 오른쪽에 끼고 평사리까지 20여 리를 걸었다. 섬섬옥수! 휘돌아 굽어지며 흐르는 섬진강이 남해에서 올라오는 봄 꽃을 마중한다. 산수유 노란 꽃잎이 하늘에 흐드러진 날, 매화향이 봄빛에 서린 날이었다. 

그리움이 갇히고 길이 끊어졌던 겨울이었다. 스스로를 유폐한 깊고 적막한 겨울 내내 앓았다. 버려진 날들마다 그리움이 피어서는 지고, 세상은 늘 안개 같았다. 세상은 보이지도 읽히지도 않았다. 천하대란인 근대의 출구가 있는지 없는지 어둡기만 했다. 때 이르게 핀 그리움인지, 아직은 이대로 가야는지? 동토머리에서 1894년에 동구를 나선 이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섬진강 가는 길의 산동 부근의 산수유.

돌아오지 않은 그리움, 전라도 가시내를 생각하며 해토머리 섬진강길을 걸었다. 봄이 왔는데, 꽃이 피는데, 전라도 가시내야 너는 어디 있느냐?

 "그래두 외로워서 슬퍼서 치마폭으로 얼굴을 가렸더냐 / 두 낮 두 밤을 두루미처럼 울어 울어 / 불술기 구름 속을 달리는 양 유리창이 흐리더냐...... 울 듯 울 듯 울지 않는 전라도 가시내야 / 두어 마디 너의 사투리로 때아닌 봄을 불러줄께 / 손때 수집은 분홍댕기 휘 휘 날리며 / 잠깐 너의 나라로 돌아가거라" - 이용악 <전라도 가시내> -

그래 전라도 가시내야. 이제 타관 객지 별빛도 없는 날들을 숨어 헤매지 말고 돌아오라. 봄빛이 이리도 출렁이는데 술막 창에서 두리번거리며 눈물을 찍어내느냐. 산수유 매화꽃 핀 들마을에 인사를 하며 섬진강길을 같이 걷자꾸나. 

 

   
섬진강길 대숲길에 바람이 상쾌하다.

산들은 연초록이 살폿살폿 오르고 강물은 싱싱하게 지즐댄다. 버들꽃아씨 버드나무가 젖먹이 아이 볼처럼 수줍은 듯 푸르다. 북만주에서 버드나무를 보았었다. 버드나무 우거진 강이란 뜻의 만주어 부르하통하. 아이후(두만강)와 훈퉁(송화강)에서도 살합연오라(흑룡강, 아무르강)에서도 버드나무를 보았다.

유화부인 곧 버들꽃아씨가 누구인가? 북방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어머니 아닌가? 버드나무는 북방 샤먼의 나무, 북방의 신목(神木)이다. 만주족(여진), 말갈족, 흉노족, 배달족 모두 버드나무를 신목으로 여겼다. 버들꽃아씨는 북방의 어머니이자 연인이다. 그 버들꽃아씨를 섬진강에서 촉촉하게 만났다. 버들꽃아씨가 바람에 연초록 댕기를 날린다. 살합연오라에서 섬진까지 과연 우리는 북방일가(北方一家), 유화일가(柳花一家)이다. 전라도 가시내가 버들아씨이구나. 

 

   
섬선진강 화개장터의 남도대교와 북방의 신목인 버드나무, 버들아씨. /

차나무와 어우러져 매화꽃이 피었다. 지난 겨울 냉해를 입은 황갈색 찻잎을 뚫고 연초록 찻잎이 오른다. 벌이 매화꽃에 앉는다. 꽃가루를 벌이 나르면 열매가 열리겠지. 과연 만물은 서로 돕는구나.

누가 약육강식의 진화를 말했는가? 협동과 연대의 진화이다. 벌이 꿀을 먹는다. 공짜가 어디 있는가? 꿀을 먹었으니 꽃가루를 나른다. 매실이 열린다. 매실을 사람이 먹는다. 동학의 이천식천( 以天食天), 날마다 하늘을 먹는 협동과 연대이다. 사람과 사람이 사람과 자연이 서로 공감하고 공진한다. 

볕 좋은 강변 모래톱이 은 비늘로 퍼득인다. 고요하고 나즈막히 강물이 흐른다. 두꺼비 나루 강, 섬진강(蟾津江)이다. 섬진강은 별칭으로 '모래가람'이라고도 한다. 장수 데미샘에서 시작하여 임실에서 오원천이 되고 운암호에서 깊고 넓은 숨을 쉬었다가 순창에서 적성강이 된다. 곡성에서 보성강을 만나 섬진강이 된다.

 

   
매화와 지난 겨울 냉해를 입어 황갈색이 된 차나무.

섬진강은 본디 모래가람·다사강(多沙江)·사천(沙川)·기문화·두치강 등으로 불릴 만큼 고운 모래로 유명하다. 1385년(우왕 11)경 왜구가 섬진강 하구를 침입하였을 때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 떼가 울부짖어 왜구가 광양 쪽으로 피해갔다는 전설이 있는데 이때부터 ‘두꺼비 섬(蟾)’자를 붙여 섬진강이라 불렀다 한다. 다른 이름도 있다. 달래강이다. 달빛을 한자로는 섬광(蟾光)이라고 한다. 달에 두꺼비가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어릴 때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라는 전래 동요를 불렀다. 모래가람 섬진강에 걸맞는 동요이다. 무슨 말인지 몰랐다. 형, 누나에게서 배워서 따라 불렀다. 지금 생각하니 헌집을 부수고 새집을 짓는다는 것이니 반역이고 혁명이다. 동학의 '다시개벽(후천개벽)'이다. 사람과 자연의 '다시개벽'을 생각하며 걷는다. 이윽고 마지막 도착지 악양 동정호의 악양루에 왔다. 중국의 동정호 악양루를 본땄나...? 

 

   
봄빛 시린 하늘에 매화는 서리고... 

어쨌거나 범중엄(范仲淹 989년 ~ 1052년 북송 北宋)의 명문 악양루기(岳陽樓記)를 떠 올린다. (한문 원문 생략)

"만약 봄날이 화창하고 햇빛이 맑으며, 물결이 일지 않아 위아래의 하늘빛이 만경(萬頃)에 달하도록 온통 푸르며 모래밭의 갈매기들은 날아와 모여들고 번쩍이는 물고기들은 헤엄치며, 언덕의 지초와 물가의 난초가 향기롭고 푸르며, 혹은 길게 퍼진 안개가 한번 개이고 밝은 달이 천리를 비추며 물에 뜬 달빛은 금빛으로 빛나고 고요한 달그림자는 마치 구슬을 가라앉힌 듯하며, 어부들의 노래 소리가 서로 화답하니 이 즐거움이 얼마나 지극한가. 이때에 이 누대에 오르면 가슴이 트이고 마음이 즐거워져 영광과 모욕을 모두 잊고 술잔을 잡고 바람을 대하고서 기쁨이 넘치는 경우도 있으리라...

 

   
악양의 동정호와 악양루.

아아! 내가 일찍이 옛 어진이들의 마음가짐을 추구해보니, 간혹 반드시 말하기를, “천하 사람들의 근심에 앞서서 근심하고 천하 사람들의 즐거움에 뒤미처 즐거워한다.(其必曰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歟)”라고 하였으리라. 아! 이런 사람들이 없었더라면 나는 누구를 따르겠는가.

시골 버스가 온다.일행 30여 명이 버스에 올랐다. 다시 되뇌인다. 어진이(선비)는  “천하 사람들의 근심에 앞서서 근심하고 천하 사람들의 즐거움에 뒤미처 즐거워한다." 해가 강을 넘어 서편 산으로 기운다. 산 그림자가 봄빛 서린 섬진강을 적막이 덮는다. / 강주영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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