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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전주를 사색하다 - 전라감영 옛터에서 관민상화를 꿈꾼다.<신년기획>전라도 정도(定都) 천년...'동방의 등불'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강주영 편집위원  |  kjyn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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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3.01  06:4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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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이 지났다. ‘장소의 혼’을 찾아 팔달로(八達路)를 걸어 전라감영 옛터로 간다. 그대와 나, 천하의 운수대통을 바란다. 천하가 막힘없이 동서고금이 사통팔달(四通八達)하기를 꿈꾼다.

1907년 일제가 전주부성의 성벽을 헐고 8m 넓이의 신작로를 뚫었다. 팔달로는 원래 풍남문에서 감영에 이르는 길이었다. 신작로를 내던 고통과 치욕을 표현한 노래가 오늘까지 전한다. “치마끈 졸라 메고 논 사노니 신작로 복판에 다 들어가네.”하는 남원 길쌈 노래가 있다.

 

   
사통팔달 전주 팔달로의 70년대 모습, 지금은 사라진 철구조물 미원탑은 전주의 장년들에게는 추억을 자아낸다. 

“애깨나 낳는 년 유곽으로 팔려가고, 힘깨나 쓰는 놈은 신작로로 간다”는 노래도 있다. 공사판의 고단함과 민족의 서러움이 절절하다. ‘십이칸 도로’ 팔달로는 1960년대에 이름이 붙여졌다. 1칸은 대략 2미터이니 12칸이면 넓다는 뜻이겠다. 경복궁 강연전이 11칸이라 한다. 

 
이지역 문인인 신귀백 선생이 전주부성을 허물고 신작로를 만들던 이야기(「전주편애」 128쪽)를 하면서 노래를 인용하였다. 그 인용이 절묘하다. 구닥다리 사랑노래 뽕짝으로나 치부했던 노래였다. 맞는 자리에 옮기니 뜻이 전혀 달라진다. 1958년에 작곡되었으니 전주부성이 헐리던 아픔의 노래가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니 인용이 절묘하다. 남녀의 노래가 민족의 아픔을 담은 노래가 된다. 

“장벽은 무너지고, 강물은 풀려 / 어둡고 괴로웠던 세월은 흘러 / 끝 없는 대지 위에 꽃이 피었네 / 아아 꿈에도 잊지못할 그립던 내 사랑아 / 한 많고 설움 많은 과거를 묻지 마세요” - 나애심, 「과거를 묻지 마세요」, 1958년 동명의 영화 주제곡, 나애심 주연으로 출연하고 그 오빠인 전오승이 작곡했다. 나애심의 본명은 전봉선이다.  -  


풍남문에서 본디의 팔달로로 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근대 초에 새로 난 팔달로로 갔다. 풍남문에서 걸어서 5분인 곳에 전라감영 옛터가 있다. 전주성은 감영과 임금에게 삭망례를 올리던 객사가 북쪽에 있고 그 남쪽 왼편에 감영이 오른편에 전주부 기관이(오늘의 시청) 위치했다.

품(品)자 도시라는 데에 이견이 없다. 중앙에 조정을 두고 동문, 남문(풍남문), 서문(패서문), 북문(공북문)을 두었다. 동서남북문 앞에 시장을 두었다. 남부시장, 동부시장, 중앙시장이 여전히 손님을 맞는다. 성안은 정치요 성밖은 경제이다. (신귀백 「전주편애」 참조) 

 

   
옛 전주부성지도 위측에 객사가 있고 아래측에 좌우로 감영과 전주부성 기관들이 있는 품자형 도시이다.

   
오늘의 전라남북도와 제주를 관장하던 호남 제일성 전라감영과 전주부성은 사라진 지 오래이다. 지금은 전라감영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이다. 지난 글에서 ‘전라감영’인가? ‘집강소(執綱所)’인가?를 적었다.

집강소는 1894년 5월 8일(음력) 동학혁명 당시 전주화약으로 설치한 농민군과 왕조지배기구의 협치기구이다. 그해 6월 21일 일본이 고종을 핍박하여 친일정부를 구성했다. 전라감사 김학진과 전봉준은 7월 6일 감사 집무실인 선화당에서 회담을 하고 집강소를 확대 강화한다.

주류와 비주류가 만났다. 주류와 비주류가 서로 사통팔달했다. 농민군이 구체제를 완전히 일소하지 않고 공동의 지방정부를 구성했다. 구체제를 폭력적으로 완전히 일소하지 못함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농민군이 러시아처럼 나라 전체를 장악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닌 상황에서 ‘관민상화’는 어쩔 수 없었다고 보는 이도 있다.

 

   
1894년 농민군이 집강소를 설치한 선화당, 전라감사의 정청이다. 무기고 폭발로 1951년 멸실되었다. 

1871년의 프랑스 파리코뮌 (Paris Commune)은 두 달도 채 못 되어 구체제에 진압당했다. 2차 봉기로 농민군은 우금치에서 깨지지만 집강소 체제는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집강소가 활동하며 개혁을 진행한 내용은 자세히 전하는 내용이 없는 것으로 안다. 기간도 서너 달로 짧았다. 다만 밑바닥 농민이 나주와 운봉 정도를 빼고는 지방정부의 핵심권력을 운영했다. 서로 서로가 저항이 거셌다.

김개남은 사대부권력과 향촌사회의 구체제를 완전히 일소하려고 한 것으로 알려져 온다. 우국지사이되 사대부와 양반 천하에 갇혔던 매천 황현 같은 이는 적괴 전봉준의 시체를 찢고, 감사 김학진의 머리를 달 아래에 걸고 싶어했다.  

전봉준 평전 「봉준이 온다」와 소설 「나라 없는 나라」로 혼불문학상을 받은 이광재는 신문 칼럼에서 이렇게 썼다.

“집강소의 농민 대표와 각 고을의 수령이 고을의 운영에 관하여 협의하고, 이를 도집강에 선임된 농민군 대표 송희옥과 전라감사 김학진이 총괄하는 새로운 형식의 자치제도가 출현한다. ‘관민상화(官民相和)’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인데, 기존의 행정력과 백성이 협력하여 새로운 자치체제를 만들어 냈던 바, 이것이 바로 ‘관민상화’였던 것이다. 실로 세계 역사에 유례를 찾기 어려운 자치행정체계가 바로 이곳 호남에서 태동했다는 사실. 그로부터 120년이 지난 오늘 비로소 관민협치니, 거버넌스니 하는 말들이 운위되고 있음을 상기할 때 ‘관민상화’가 얼마나 위대한 지역자치의 모델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전주 풍남문 앞을 지나는 전주 한옥마을 명품버스 / 문요한 기자

전라감영 옛터를 가면서 국가와 사회를 생각한다. 그저 옛터의 복원이 아니다. ‘장소의 혼’을 되새김질한다. 투표로 합법성을 얻은 공적 권력인 국가가 있다. 여기서 국가는 ‘나라 전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학계에서는 국가를 ‘통치체제’를 말한다. 우리가 사는 ‘나라’와 구분하여 쓴다.

최근 영화로 만들어진 ‘1987년’ 민주화 이래로 본격적인 시민사회가 구성되었다. 1995년 지방자치와 실시와 함께 시민사회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사기업에는 사외이사로 직간접적으로 참여한다.
 
거버넌스(governance) 또는 협치(協治)는 유행어이자 필수로 되었다. 끝없이 권력에 들자고 하는 욕망이거나, 진심의 비판과 견제이거나 상관없다. 국가와 시민사회가 서로 간섭하고, 대립하며, 동맹하고 합종연횡한다. 대등한 것은 아니다. 아직은 국가와 기업이 훨씬 쎄다.

그렇지만 국가와 시민사회가 공존하는 이중권력 체제라 할 만하다. 점수를 줘 본다. 수치를 증명할 수는 없다. 공이과팔(功二過八)이다. 공은 둘이요 허물은 팔이다. 여전히 선거동맹을 벗어나지 못한다. 망국적인 성장우선주의를 깨지 못했다. 지역적폐를 없애지도 못했다. 지역을 재구성하지도 못했다.

전주는 전주답지 못하고, 나주는 나주답지 못하다. 천하에 자랑할 본보기가 없다. 서로 서로가 닮고 하는 짓도 같은 짝퉁 천하이다. 여전히 주류들의 거버넌스이고 협치이다. 

때문에 1894년의 ‘집강소’, ‘관민상화’와는 완전히 다르다. 교수는 있되 농민은 없다. 전문가는 있되 노동자는 없다. 박사는 있어도 쌀가게 아저씨는 없다. 컨설턴트는 있어도 주민은 없다. 그러니 지배동맹이고 선거동맹이라 한다.

시민사회는 일부 반영해도 민중사회는 반영하지 못한다. 더구나 ‘민중’이라는 말과 ‘시민’이 뭐가 다르냐며 ‘민중’을 폐기하려 하는 이도 있다. 시민은 공적 권력 체제에 직간접으로 진입했다. 민중은 아직 그러지 못하다. 이 상태에서 ‘민중’의 폐기는 기득권의 배타적 논리이다.

 

   
전라감영 복원을 위해 헐리는 옛 전북도청사 / 문요한 기자

시민적 관념과 민중 관념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시민천하와 민중천하는 다르다. 시민과 민중의 차이가 없어질 때는 오로지 ‘민’만 남는다. 민의 천하를 만들 일이다. 

말이 나온 김에 용어를 정리하고 간다. 인민에서 '인'은 자기의 인격적 도야가 된 이를 말한다. '민'은 그냥 개별적 존재이다. 선비가 과거에 합격해 조정에 나가면 이를 군자라 불렀다. 군자와 성인은 다른 뜻이다. 조정에 나간 군자를 인이라 할 수 있다.

인민(人民)은 지배세력과 피지배세력을 더한 말이지만 무리보다는 개별적 존재이다. 사대부와 백성을 합한 말이다. 중(衆)은 천대받는 무리이다. 민중(民衆)이라 하면 천대받는 백성 무리라는 뜻이다. 엄연히 천대 받는 민중들이 존재하는데 시민으로 바꿀 수는 없다. 
 
시민(市民, Citizen)은 사전적 관점으로, “시민은 민주주의적 자치를 통치의 기본질서로 하는 특정한 정치공동체에서 그 공동체가 보장하는 모든 권리를 완전하고도 평등하게 향유하는 개별 구성원을 가리킨다. 헤겔은 자신의 법철학에서 시민을 일면적 이성에 따라 전적으로 사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불완전한 사회적 존재로서의 개인으로 취급하였으며, 마르크스는 아예 이런 사적 이익을 추구할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개인들의 집단을 부르주아 계급으로 국지화시켜 자본주의적 계급 갈등의 원인 세력으로 지목하였다.” -「문학비평용어사전」- 


시민은 긍정적으로는 공화국의 권리를 주체적으로 누리는 사람이고, 부정적으로는 사적이익을 추구하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개인이다. ‘시민’을 어떤 뜻으로 쓰는 지는 문맥 속에서 판단할 일이다. 하지만 시민이 민중을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  

시민이 각성하여 시민사회가 만들어졌다. 이른바 이중권력체제이다. 아직은 시민사회보다도 국가가 훨씬 쎄다. 그러나 시민이 아닌 밑바닥 민중사회는 구성되지 않았다. ‘귀족노조’라 하지만 그 말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노조가 이타성 없이 자기 계급주의에 함몰된 것을 비판할 수는 있다. 그러나 사회적 문법에서 ‘귀족노조’라는 말은 노조 자체를 마녀사냥하는 느낌이 있다. 노동 밑바닥이 올라서야 할 문제이지 노동 윗바닥이 내려올 일은 아니다.

‘귀족노조’와 견주어 ‘귀족농민회’라는 말은 없다. 1894년의 집강소를 복원하면 오늘날 중앙정부의 ‘노사정위원회’가 되겠다. 김대중 정부 때 만든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농정위원회’ 가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전라북도 옛 도청사이다. 신시가지로 도청이 옮겨가고도 상당기간 보존되다가 전라감영 복원이 현실화되자 2017년 철거되었다. 

전라감영 옛터는 통치기구였다가 집강소로 바뀌었다. ‘주류와 비주류’가 서로 같이 이룬 천하이다. 그러니 혁명의 터이다. 민주주의 이후의 민주를 꿈꿀 만한 곳이다. 지배동맹, 선거동맹의 좁은 거버넌스를 버리고 밑바닥과 윗바닥이 온전히 만나는 관민상화를 도모할 만한 곳이다. 천하공물 대동세계로 갈 만한 장소의 혼이다.    

 

동학농민군이 고부봉기 때부터 제시한 폐정개혁안은 여러 개다. 집강소 시절에 제시한 12개조 폐정개혁안은 널리 알려져 있다. 

① 도인(道人)과 정부와의 사이에는 숙혐(宿嫌)을 탕척(蕩滌)하고 서정(庶政)을 협력할 것, ② 탐관오리는 그 죄목을 사득(査得)해 일일이 엄징할 것, ③ 횡포한 부호배(富豪輩)를 엄징할 것, ④ 불량한 유림(儒林)과 양반배(兩班輩)는 못된 버릇을 징계할 것, ⑤ 노비 문서는 불태워버릴 것, ⑥ 칠반천인(七班賤人)의 대우는 개선하고 백정(白丁) 머리에 쓰는 평양립(平壤笠)은 벗어 버릴 것, ⑦ 청춘과부(靑春寡婦)의 개가를 허락할 것, ⑧ 무명잡세(無名雜稅)는 일체 거두어들이지 말 것, ⑨ 관리 채용은 지벌(地閥)을 타파하고 인재를 등용할 것, ⑩ 왜(倭)와 간통(奸通)하는 자는 엄징할 것, ⑪ 공사채(公私債)를 막론하고 기왕의 것은 모두 무효로 할 것, ⑫ 토지는 평균으로 분작(分作)하게 할 것 등이다. - 폐정개혁안(弊政改革案)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

오늘날에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적용가능하다. 굳이 오늘에 견주어 말할 일도 아니다. 다만 “청춘과부(靑春寡婦)의 개가를 허락할 것”은 한 마디 보태야겠다. 이는 최근의 미투(me too)운동으로 현재진행형이다.

옛적에 허울뿐인 가문의 명예를 지키고자 청춘과부의 자결을 은연 중에 강요한 명예살인이 한 둘이었을까? 1894년 신분제 사회, 그것도 질식할만한 가부장 사회에서 ‘청춘과부의 개가’는 과부와 그 자식의 먹고 사는 복지에서도 중요한 문제였을 것이다. 개가는 젠더(Gender)라는 성을 넘어 곧 신분제와 가부장 타파, 남성 권력 사회의 타파까지를 의미하는 구호이다. 

다시 말하지만 주류와 비주류가 만났을 때 협치가 되고 관민상화가 되는 것이다. 같은 지배세력인 여야가 서로 좋은 의미에서 타협정치를 할 수는 있지만 협치라 해서는 안된다. 협치의 진정한 의미는 소수자, 비주류를 존중하고 권력으로 진입시키는 것이다.

진정한 협치는 지방의원이고 국회의원이고 비례대표를 직능별+지역구별로 해당 주민이 선출해야 한다. 대중정당 정치를 부정할 수는 없다. 때문에서 비례대표를 당에서 공천하되, 직능별 추천권을 주는 것이다.

즉 노조나, 농민회, 학교에서 몇 명을 추천하거나 선거로 뽑아서 당에 통보하면 그 중에서 당이 공천을 하는 것이다. 영국 노동당이 이렇게 하는 것으로 안다. 이 정도는 되어야 지배동맹의 협치를 벗어난다.  

 

   
전라감영 옛터 복원 장면 항공 촬영 / 문요한 기자

지금은 터만 남아 감영의 모습을 알 수는 없다. 18세기에 이르러 정청(政廳)인 선화당(宣化堂)을 비롯하여 감사의 처소인 연신당(燕申堂), 감사 부친의 처소인 관풍각(觀豊閣), 감사의 가족 처소인 내아(內衙), 예방비장(禮房裨將)의 집무소인 응청당(凝淸堂), 6방 비장의 사무소인 비장청(裨將廳), 감사의 잔심부름을 맡아 하는 통인청(通人廳), 하부 실무자들이 일하는 곳인 작청(作廳), 정문인 포정루(布政樓) 등 25개의 시설을 갖추었다고 전해진다.

감영에서 집강소로, 다시 감영으로 되돌아갔다. 일제의 조선 총독부 지방관청이 되었다. 해방 후에는 전라북도 도청이 들어섰다. 1943년에는 선화당·작청·진휼청·통인청만 남았다.

1951년에는 당시 경찰서 무기고에서 폭발이 일어나 선화당을 비롯한 부속건물이 불에 탔고, 지금은 선화당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회화나무만 옛 도의회 마당에 남아 있다. 폭발이 있은 이듬해 그 자리에 전라북도청사가 들어섰고 이후 의회 및 전라북도경찰청 건물이 들어섰다. 2017년에 철거되었다.  

주류와 비주류가 만나는 오늘의 집강소를 꿈꾸며 동문거리로 간다. / 강주영 편집위원

 

   
강주영 전북포스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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