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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공짜로 잘 묵고 잘 놀자" <기세춘 선생 인터뷰><신년기획>전라도 정도(定都) 천년...'동방의 등불'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강주영 편집위원  |  kjyn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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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2.05  10: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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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정신의 보편성을 ‘타는 목마름으로’ 찾고 있었다. 정여립의 천하공물 대동사회, 동학의 후천개벽 인내천, 전라도의 한(恨), 슬픔이 아닌 대동사회를 염원하는 응축된 에너지인 한을 고심하고 있었다. 고금불통을 안타까워하시며 고금소통을 말씀하시는 묵점 선생을 만나게 되었다.

전주 한옥마을에서 정갈한 한식집을 운영하는 다문의 소춘수 선생으로부터 소식이 왔다. 민주화와 통일운동의 원로이시고 한학자이신 묵점(墨店) 기세춘(奇世春, 1933년 ~ ) 선생이 전주의 후학을 만나러 오신다 한다. 귀한 시간을 얻었다. 2018년 2월 1일이었다. 

 

   
묵점 기세춘 선생.

대화는 선생의 말씀을 듣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주제를 정한 대화가 아니었다. 이리저리 자유로운 대화였다. 녹취가 아니고 적었다. 대화의 복기가 혹여 묵점 선생의 뜻을 잘못 전달할지 두려웠다. 허나 묵점 선생의 허락을 얻어 전북포스트에 올린다. 괄호로 묶은 글은 대화에 대한 필자의 머릿속 생각과 대화를 복기하면서 자료를 찾아 적은 글이다. 옅게 봄기운을 밴 입춘 전야였다. 옛 선비의 방은 고즈넉했다. 저녁 7시에 시작한 대화가 자정을 넘겼다. 새벽 1시였다. 편의상 평어를 쓴다. 기세춘 선생은 묵점, 강주영은 강목으로 적는다.

 

묵점 : 사람들은 공자(孔子, 기원전 551년~479)가 큰 벼슬을 한 것으로 잘못 알어. 공자는 큰 벼슬을 한 적이 없었어. 경대부(卿大夫 높은 벼슬아치인 경과 대부)가 아니고 하대부(下大夫)야. 계(季)씨가(家)에서 창고지기로 일하기도 했고, 천하를 평생 주유했지. 벼슬로는 잠깐 지방공무원을 한 게 전부야. 13년 망명생활을 했지. 하급 신분인데 그가 큰 정신을 세웠지... 

강목 : (공자는 귀족이 아니라 누구라도 배우고 익혀 정치를 하는 군자(君子)가 될 수 있다고 여겼다. 신분제 사회에서 공자의 혁신가적 면모이다. 실력주의라 할만하다. 뜻이 다르면 권력에 굴하지 않고 뜻을 펴기 위해 천하를 떠돌았다. 이런 뜻으로 새겼다 )

묵점 : 민주화운동을 하고 치열하던 학생들이 군대를 갔다 오면 사람이 버려 와요.

강목 : (군대의 일방통행 전제주의에 오염되었다. 민주가 사회에 나와 갑질을 해댄다. 당시 운동권의 질서는 전제주의 문화가 가득했다. 선배는 갑이었다. 독재의 탄압을 피하기 위한 사정도 있었지만 내면화된 전제주의는 요새 갑질로 드러난다. 사회는 여전히 비민주이다. 혹자가 ‘민주를 민주화하라’고 한 말이 있다.)

묵점 : (차가 들어왔다.) 차는 귀한 것이지요. 옛날에 먹고 살기가 힘든데 차가 손이 많이 가는 것인데 농민들이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고관대작들의 기호품이었지요.       

강목 : (애민(愛民)하는 묵점의 사유가 드러난다. 이 말로 식민시대 유럽이 아시아에서 동방무역으로 차를 가져가던 실상이 한방에 꿰진다. 차 따위로 전쟁을 하다니 생각했었다. 차는 권력과 신분의 상징이었던 셈이다. 지금에 흔한 차로 옛의 차를 말한다면 고금이 불통이다.)

 

차로 비롯된 이야기가 초의선사와 추사 김정희로 옮아갔다가, 유배지 강진에서 차를 마시던 다산 정약용(1762.6.16. ~ 1836.2.22.)에 이르렀다. 

묵점 : 사람들이 다산을 청렴한 공무원으로 말한단 말이지요. 

강목 : 목민관(牧民官)이요, 공무원이라 말씀하시네요. 그러네요, 공무원...

묵점 : 다산은 공무원이 아니고 혁명가예요. 다산의 추대론이 있어요. 추대론은 혁명사상이란 말이죠. 이 추대론을 사람들이 잘 몰라요. 

 

   
후학들에게 강의하는 묵점 기세춘 선생.

강목 : (흔히들 많은 정치인들이 다산을 존경한다고 한다. 민을 애민하는 목민관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흔하다. 다산은 경세제민(經世濟民)의 혁명가인데 다산의 진면목을 보지 못하고 훌륭한 공무원 정도로 아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노장의 일갈이다. 다산의 추대론은 이렇다. 신정일 선생이 쓴 「조선을 뒤흔든 최대 역모사건」의 글을 인용한다.  “다섯 집이 이웃이 되니 다섯 집에서 대표자를 추대하면 그 다섯 집의 대표자가 된다. 다섯 집씩 모여 마을이 되고, 다섯 마을이 모여 현이 된다. 마을에서 대표자를 추대하고, 그와 현의 대표가 함께 추대한 사람이 제후가 되며, 제후들이 함께 추대한 사람이 군주가 된다. 군주는 간접선거로 선출해야 한다.” -374쪽-  오늘날의 의원내각제와 완벽하게 맞는 생각이다. 정조 시대에 이런 생각은 반역이다.)   

묵점 : 고전이란 것이 우리 나라에는 없어요. 일제가 방방곡곡을 뒤져서 다 태워버렸지. 지들 입맛에 맞는 내용만 추려서는 36권 조선사를 만들었어요. 조선의 분서갱유를 일제가 했어. 그래서 동학(서학과 대비된 동학)을 할 수가 없는 거지. 선비를 없애고 서학을 대대적으로 일으켰지. 일제가 사대부 집안의 조선인을 데려다가 일본에 유학시켰어요. 조선인의 돈을 먹으려고 수도 없는 엉터리 대학들을 만들었단 말이지. 공부도 지지리도 못한 것들이 일본 가서 빈둥빈둥 책 몇 권 읽고 돌아와서는 일제 공무원이나, 금융조합원, 학교 선생을 했어. 일본을 알고 근대를 알려고 공부한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대개는 출세하려고 졸업장 따러 간 사람들이야. 이 사람들이 자기 권세를 누리려니 더 더욱 서구의 논리만 이식시키고 그걸로 학풍을 만들었어. 우리 것 없는 일제풍 서학이 우리 정신으로 굴절되었단 말이야. 해방이 되어서도 친일파가 득세하고, 미국 논리가 들어오고 정신은 광복이 안 되었어. 

강목 : (국대안 투쟁! 1946년 국립대학안(國立大學案)을 반대하여 일어난 동맹휴학투쟁, 8월 23일 군정령으로 강행하였다. 군정이라 부르지만 사실은 미국의 신탁통치이다. 이 투쟁은 흔히 학원자치권 문제로 이야기되지만 사실은 우리 것, 즉 동학 속에서의 서학의 흡수를 원했던 것으로 본다. 국립 서울대의 출범은 특히 인문과 역사에서 고금의 불통과 일제와 미국의 논리가 지금까지도 내면화된 계기가 되었다. 성균관을 국립대로 하고 서학을 결합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유학 등의 동양 철학이 고루하고 진부한 것이라는 그릇된 인식이 넓게 퍼진 것이다. 정치는 주권국(?)이 되었으나 정신은 광복되지 않았다. 학계 정풍운동이 크게 일어야 하는 것 아닌가? 묵점 선생의 말씀은 고금의 불통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광복은 고금이 소통되는 계기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묵점 : 해방 당시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가 큰 지지를 받았어. 미국서 살던 이승만을 누가 알아주기나 했나, 미국이 대항마로 내세운 거야. 그 이승만이가 정읍서 단정수립 발언을 하잖아. 정읍 발언! 그래서 여기서부터 단정 반대 투쟁이 일어났지. 김구가 남북합작을 하고, 지역마다 반대 투쟁이 일었는데 제주 4.3항쟁도 그 연장선이지. 군대를 보냈는데 동포를 진압할 수 없다고 일어난 게 여순항쟁이야. 그래서 월남한 반공청년을 꼬드겨 서북청년단을 만들었어. “미국놈 믿지 말고 소련놈에 속지마라 일본놈 일어선다”  이런 노래가 있었지. 이 서북청년단들이 제주도서 난장질을 했지. 나중에 이들을 해병대의 창립멤버로 만들어. 이때 박정희가 남로당 프락치로 활동했는데 저 살려고 더 철저히 반공을 내세우고 물어뜯는 거야. 4.19세력도, 80년대 민주화 세력도 다 변절되어 가지고 교묘히 더 물어 뜯지. 김문수, 이재오 이런 사람들이...      

강목 : (미군정을 미군 신탁통치로 본다면 미소 공동 신탁통치를 받아들이는 게 옳다고 본다. 반탁은 국내에 기반이 없는 이승만 류와 친일파 류가 민족주의에 편승해 만든 분단 이데올로기였다고 본다. 냉엄한 국제 현실에서 3년간의 신탁통치는 받아들일만한 것이었다. 현실은 남과 북 각각 군정 신탁통치를 받고 분단국가 수립이었다. 반탁에 나선 김구의 안이한 현실 인식이었다. 나중에 깨달아 남북합작을 추진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남로당 역시 전술 운용에서 혼선을 빚었다. 구호를 신탁 찬성이 아닌 남북연합독립으로 했어야 했던 것은 아닌가? 역사의 가정만큼 부질없는 일이 어디 있으랴!)

 

   
묵점 기세춘 선생의 저작들. 

묵점 : 이승만이 죽산 조봉암을 입각시켜 토지개혁을 추진했지. 북에서 토지개혁을 하고 그러니 토지개혁을 하지 않으면 나라가 뒤집어질 판이었어. 죽산이 이승만 정부에 입각한 것은 이승만에 협력한 것이 아니라 나름의 우국충정을 가지고 입각한 것으로 봐야 맞아. 토지증권을 만들고 소작료의 15할 정도로 농민들이 분할 납부 하도록 했어.

강목 :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에서 남한에서의 토지개혁을 둘러싼 당대의 갈등이 잘 표현되어 있다. 북에서는 1946년 3월 5일 ‘북조선토지개혁법’으로 무상몰수 무상분배로 북한정권의 주요 지지기반이 만들어졌다. 북의 토지개혁으로 구시대의 신분제를 유지할 물적 토대가 완전히 무너졌다. 남에서는 지가상환액을 15할로 인상하고, 지주에게는 기업자금으로 정부 보증으로 융자할 수 있는 지가증권을 발급하기로 한 개정안을 채택, 통과시켰다. 1950년 3월 10일 개정법이 공포되어 농지개혁 실시를 위한 지루한 입법조처가 완료되었다.

그러나 지루한 입법 과정에서 소작방매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져 토지개혁의 효과가 미비하였다. 매수농지에 대한 평가는 평년작 주생산물 생산량의 15할로 하고, 지가보상은 정부가 지가증권을 발급하고 지가증권을 기업자금으로 사용할 때에는 정부가 융자·보증을 하여 증권 액면은 보상액을 환산한 당년도 당해 농지 주생산물 수량으로 표시하되, 증권의 보상은 5년간 균분연부(均分年賦: 해마다 똑같이 나누어 냄)로 하여 매년 액면 농산물의 법정가격으로 산출한 금액으로 지급한다.

분배받은 농지에 대해서는 소유권을 인정하되, 상환이 완료될 때까지는 매매·증여, 기타 소유권의 처분이나 담보권의 설정을 제한하도록 하였으나 암암리에 돈이 궁한 농민들은 증권을 이전 지주에게 헐값으로 팔았다. 기존의 부채를 탕감하지 않은 것이다. 하니 이전의 지주들은 평년작의 15할이라는 값싼 값으로 소유권을 다시 확보했다. 눈 가리고 아웅한 셈이다. 그나마 전쟁이 나서 유야무야 되었다.)

묵점 : 전쟁이 났어. 6.25가 났는데 3~4년 하다가 어떻게든 끝나고 하나가 될 줄 알았지. 이렇게 몇 십 년을 갈 것이라고는 그때는 생각을 못했어. 우리 때에 해결할 줄 알았지. 이제 무거운 짐을 후생들에게 넘겨서 면목이 없어. 전쟁 이야기는 길게 할 것도 없어. 

강목 : (묵점 선생이 전쟁 때는 10대 후반이어서 들을 이야기가 많았으나 차마 질문을 하지 못했다. 강목은 한국전쟁을 따로 보지 않는다. 1894년의 동학부터 1953년까지를 ‘60년전쟁’이라 부른다. 동학, 청일전쟁, 러일전쟁, 의병, 독립전쟁, 중일전쟁, 미군신탁통치기의 분단과 제주4.3, 여순항쟁 같은 도시봉기, 한국전쟁을 연속선에서 본다. 이 ‘60년전쟁’에서 1,000만 가까이 죽거나 실종되었다. 하물며 그 뒤의 베트남까지... 한국의 근대 백년은 전쟁의 연속이었다.)   

 

묵점 : 케네디가 취임하는데 이 사람이 양키가 아니고 가톨릭이란 말이야. 아이크(아이제하워) 대통령이 물러나면서 이임식에서 대통령도 어쩌지 못하는 군산복합체를 말했지. 근대는 군산복합체야. 군인과 전쟁이 근대를 휩쓴 시기였어. 4.19 후에 지방자치 선거를 도우면서 김상술(민주당) 전라북도 지사를 만드는데 기여했지. 몇 달 못했어. 5.16쿠데타가 났어. 아이크가 말한 군산복합체가 떠 오르더군. 군산복합체는 숨어 있고 그 앞잡이들이 나선거야. 유럽의 유대인 학살은 전 유럽이 묵인 방조한 거야. 훗날 독일이 다 뒤집어썼어.  
 
그래서 동학혁명연구회를 만들었어. 고금이 불통된 현실에서 동학을 연구하여 우리 생각으로 새날을 꿈꾸었지. 지금 후생들이 동학도 하고, 마르크스도 읽고 그러지만 그때는 일본이 고금을 끊고, 미국이 들어왔어도 그런 생각들이 영 끊긴 것은 아니었어. 그러고 있는데 신영복이 찾아 왔어. 동학을 같이 공부했으면 해서. 이 사람이 알다시피 경제학을 공부한 사람이잖아. 이런 연유로 통혁당 사건 때에 영복이는 사형을 받았는데 집안과 여러 사람이 구명을 해서 무기로 감형되었어. 나도 잡혀갔는데 구명 운동도 있고 해서 고초는 겪었지만 영복이처럼 되지는 않고 금세 나왔지.            

강목 : (이 통혁당 사건 관련하여 여러 숨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옮기기에 적절치 않아 적지 않는다. 근대는 과연 전쟁의 연속이다. 하루도 전쟁이 잠잘 날이 없다. 전국시대이다. 안보논리가 다른 논리를 압도한다. 4.19때만 해도 전라도는 인구로도 경제력으로도 국회의원 수로도 전국 일등이었다. 박정희 때 우리는 멈췄고 경상도는 태평양으로 진격했다. 서해는 죽의 장막으로 막혔다. 13대 도지사는 민선자치였다. 김상술(金相戌)은 민주당 소속으로 1960년 12월 29일 ~ 1961년 5월 23일까지 근무했다. )

묵점 : 장준하가 하는 사상계에도 참여하고 그랬지. 박정희가 철권통치를 했지. 뭔가 하나 터트려야지 이런 생각을 하다가 김지하가 떠 오른 거야. 부추겼다기보다는 요샛말로 하면 대박이 하나 있어야겠다. 이런 것인데 지하가 오적을 발표한 거야. 난리가 났어.  

 

   
묵점 기세춘 선생

강목 : (1970년 오월 사상계에 담시(譚詩), 이야기 시 형태로 발표되었다. 절절하고 통쾌했었다. 금서였지만 당시 운동권으로서 오적을 읽지 않으면 판에 낄 수가 없었다.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 등을 나라를 팔은 을사늑약의 오적에 빗대었다. 오적이 홀로이 골방에서 부지불식간에 나온 것이 아니라 시대의 여러 논의를 통해 나온 글이라는 생생한 증언이다.)      

묵점 : 80년대가 되어서 사구체논쟁(사회구성체 논쟁, 이른바 NLPD논쟁, 반식민봉건이냐, 국가독점자본주의냐)이 나왔지. 강목도 그 논쟁에 참여했겠네. 여럿이서 걱정을 했지. 여러 길을 찾는 것이야 좋은 일이나 운동 진영이 갈라지게 생겼어. 결국은 그렇게 됐지. 다만 대중들이 갈라지지 않고 87년 항쟁을 만들어냈어. 그런데 다른 생각이라도 한 틀에서 어떻게 잘 했어야 하는데 지금 여러 갈래로 찢어져서... 갈라졌어도 함께 할 방도가 있는 법인데. 지금은 우리 같은 사람들이(원로) 합쳐 낼 힘도 권위도 없어... 

강목 : (여기서 몇 번을 강조해서 말씀하신다. 생각은 다르더라도 통일하는...)

 

묵점 : 정여립 이래로 동학을 거치면서 전라도는 정의를 내세우면서도 객지에 가면 전라도라는 것을 숨긴단 말이지. 내면화된 패배의식을 해원해야 하는데, DJ때도 못 했단 말이야. 이건 호남 출신 대통령 이런 걸로 해결되는 게 아니야. 그래 호남 정신이 뭐냐? 정여립의 천하대동이야. 다른 것 할 것 없어, 동학도 광주도 다 대동사회인 게야. 고심이 아름다운 것이지. 공자나 학문에서 답이 나오는 게 아니야. 거 라디오에다 날씨를 물어봐야 다 허방이야. 만권의 책을 읽은들 한 줄 뜻이 없으면 쓸모가 없어. 읽은 게 다 똥덩어리야. 

강목 : (배우고 익히되 그에 머물지 말고 세상과 부딪히라는 뜻이리라. 정여립의 대동사회를 이은 인내천의 세계를, 하여 전라도의 한은 슬픈 애상이 아닌 대동사회를 염원하는 응축된 에너지의 결정(結晶)으로 고심하던 차였다. 노스승에게서 정여립의 대동사회를 들으니 해원이 되는 듯하다. 기실 대동은 예기에 나오지만 묵점 선생이 공부하신 묵자가 대동사회와 서로 사랑하는 겸애를 주창하지 않았던가?)

묵점 : 요세 포스트모더니즘이니 뭐니 한단 말이야. 근대를 해체하자는 것이지. 그런데 무슨 실체가 없어. 뭐라 뭐라 하는데 잘 모르겠고. 근대의 합리적 이성이 쓸모없다는 말도 맞고, 근대가 병통인 것도 맞는데 실체가 없어. 함께 살면 되지. 사회를 해체하면 어떻게 살어. 어떤 사회를 만들자고... 옛날에 제사를 지냈어. 땅에다 지내고 산에도 지내고. 그래서 가족이 모인단 말이지. 제사가 죽은 조상만 모시는 게 아니야. 원래가 공동체에다가 하는 거야. 절하는 것만 생각하는데 노는 게 다 제사야. 함께 노는 세상이 제사고 굿이야. 여기에 공통의 목적, 공통의 이해관계, 약자의 배려 이런 게 있었단 말이야. 제사가 많고 놀이가 많으면 거지도 배부르고 다녔어. 

강목 : (영리기업에 뺏긴 관혼상제를 도시마을에 귀환시키는 실제적인 방안을 고심하던 차였다. 관혼상제는 각종 생일, 합격, 개업 등의 기념일까지 더하면 늘 있는 것이라, 공동체 형성의 핵심이라고 여겼다. 개인화된 근대의 해체는 결국 아름다운 옛의 복귀이다. 고금의 합작이다. 도시 마을 카폐에서 생일 찾아주기 운동만 해도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 만나면 이야기가 되고 깊어지리라. 살인죄가 아닌 다음에야 죽어라 싸우다가도 풍물굿 같이 하고 술 한 잔 하면서 사과하고 풀어졌다. 같이 살 사람이니까. 지금은 같이 살 사람이 아니니, 싸우고 돌아서면 끝이다.)      

 

   
강주영 전북포스트 편집위원

묵점 : 부족사회, 씨족사회, 국가 등 사람이 모이면 다 신이 있단 말이지. 하나의 나라가 되려면 마을마다의 신을 다 인정하고 존중했어. 중화가 그러잖아. 전국시대에 1700여개의 나라가 있었어. 서로 싸우고 그랬지만 어느 한 곳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았어. 그래서 오랑캐인 원도, 청도 다 제국을 세웠어. 각 민족과 부족을 다 인정했단 말이야. 그리고 모두들 또 다른 상신(上申)의 존재를 인정했어. 그래서 종교간 대화를 제안하고 모여서 일도 하고 그랬어. 문익환과 같이 책도 썼지. 

강목 : (명나라의 정화가 콜럼버스보다도 먼저 아메리카에 도달했고, 아프리카 희망봉을 갔어도 정복하지 않았다. 당시 동양의 문명과 무력은 세계를 정복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정화는 이슬람이었고, 유학의 명에서 중용되었다. 제국의 원리가 다르다. 이슬람의 오스만 제국에서도 이슬람, 그리스정교, 힌두 등 여러 종교가 천여 년 가까이 공존하였다. 문익환과의 공저는 「예수와 묵자」를 말한다.)   

묵점 : 공자, 묵자, 노자 그러는데 공짜로 잘 묵고 잘 놀자 하면 되어. 공짜로 잘 먹고 잘 놀려는 마음을 남에게도 하면 그게 천인합일이고 대동사회야. 어려운 것 아니거든. 그런 마음을 터득하면 공자, 묵자, 노자 읽을 게 없어. 이제 후생들이 해 나가야지.

강목 : (공짜로 잘 묵고 잘 놀자 하면 되어. 명쾌하고 단순하다. 쉽다. 그 밖에도 동서고금을 오가며 많은 말을 들었으나 그만 옮긴다. 새벽 1시의 차가운 바람이 일었다. ) / 강주영 편집위원

 

※ 묵점 기세춘 선생은 전북 정읍에서 났다. 조선의 성리학자 기대승의 후손이다. 조부는 의병활동을, 부친은 항일운동을 했다. 일본학교에 다니는 대신 서당에서 사서삼경 등 한학수업을 받았다. 나중에 초등학교 5학년으로 편입하였다. 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전남대 법과대학에 입학했다. 1963년 동학혁명연구회를 창립했다. 1968년 통혁당 사건에 연루되어 신영복 교수 등과 함께 고초를 겪었다. 민주주의와, 통일운동에 헌신하신 재야의 원로이다. 묵자와 동양 철학을 공부하며 저술하고 후학을 양성하시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묵자 - 천하에 남이란 없다」,「예수와 묵자, 문익환 공저」,「동양고전 산책」,「성리학 개론」,「노자 강의」,「묵자」,「논어 강의」,「신세대를 위한 동양사상 새로 읽기」등 다수가 있다. 최근에는 후학 양성과 함께 동양철학의 원형이라 할 ‘주역’ 관련 저술을 하고 있다. /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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