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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동학에서 촛불까지... 근대에 묻는다.<신년기획>전라도 정도(定都) 천년...'동방의 등불'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강주영 편집위원  |  kjyn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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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08  08:2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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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모르겠다. 질문만 던진다. 질문을 생각하는 의심만으로도 숨 가쁘다. 동가식서가숙의 생각이다. 날 것의 생각 그대로를 적는다. 학문의 이론적 정합성과는 거리가 멀다. 독자 제현의 너그러움을 바란다.

과거는 오늘을 통해서 드러난다. 어제의 단순한 연장이었든 법고창신(法古創新)했든 오늘을  통해 드러난다. 정신의 DNA는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다만 제대로 보지 못할 뿐이다.

1894년에서 2017년까지 동학에서 촛불이 있었다. 1894년에서 1953년까지는 '60년전쟁'이었다. 서구식 근대화의 길에서 약 1천만 명이 죽었다. 4.19혁명, 5.18민주항쟁, 1987년 6월항쟁, 2016~2017년 촛불항쟁이 있었다. 

 

그런데 궁금하기 짝이 없다. 대한민국에서는 박정희의 살벌한 철권 유신 통치에서도 부마항쟁이 있었다. 그 못지않은 전두환 정권에서도 1987년 6월항쟁이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독재정권이고 빅브라더 체제라 하더라도, 도대체 굶어서 식구들이 죽었는데도 조용한 것은 무엇이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민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나? 항미, 주체사상, 사회주의 강성대국 사상으로 무장했다고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말 희한하다. 왕조국가에서도 민란이 있었다. 조선일보도 그 이야기는 못 하고 있다. 아무튼 북쪽은 빼고 가자.

하여 궁금하다. 124년간의 저항성을 이끈 밑바닥의 정신을 무엇이라 정명(正名)할 수 있을까? 민주화와 국민소득 3만 불의 열망이라 할 수 있지만 그것은 껍데기가 아닐까?

1인 1표가 드러내는 개별 의지의 단순한 양적 집합으로 다수결의 보장이라는 절차와 형식 논리를 민주주의라 말할 수 있을까? 욕망의 개별 의지를 양적으로 일반 의지화하는 대의제를 민주주의라 부르는 것도 어딘가 못마땅하다. 

 

   
2016년 12월 대한민국 촛불 행렬. / 뉴스1

곧바로 직접민주주의를 들이대자는 것이 아니다. 대중의 지혜를 믿는다지만 1987년 이래 30년을 응축한 촛불과 일상에서의 광장 민주주의를 곧바로 결합할 수는 없다. 일상의 광장에서 직접민주주의는 욕망의 검투장일 수 있다.

1980년 5월 광주의 대동(大同)은 광주 사람들에게 공동의 적이 너무나 분명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이웃과 형제의 죽음 앞에서 모든 욕망은 억제되고 대동이 될 수밖에 없다. 숭고한 민주주의 사상으로 똘똘 뭉쳐져 있었다고 볼 수도 없다. 도대체 그 저항성의 밑바닥 DNA는 무엇일까?

허나 평화 시기에도 1980년 5월과 같은 직접민주주의의 대동이 가능한가 의심도 든다. 객관식 선택지를 놓고 벌이는 국민투표를 직접민주주의라 부르기도 민망하다. 생각하면 이슬람, 불교, 힌두의 신성(神性) 국가들도 투표를 한다. 인도의 모디는 힌두 국가를 열망한다. 국민투표가 없는 중국을 민주주의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궁금하다. 

신성 국가들이 투표를 하든 안 하든 신성 국가를 전근대라고, 미개하다고, 신정의 분리와 세속화가 진보라고 쉽게 말할 수 없다. 신성 국가 지지자를 믿음의 근본주의자라고 편히 말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아무도 이스라엘을 신성 국가라 하지 않는다. 내 보기에는 틀림없는 유대사회주의 신성 국가이다. 

신성의 제국은 가치와 문명의 국가이다. 민족과 인종에 기반한 국가가 아니다. 말 그대로 신성의 제국이다. 1차대전으로 오늘의 터키로 쫄아든 오스만제국, 영국 식민지 이전의 무굴제국, 대청제국이 있었다. 대영제국과는 성격이 판이하다. 

신성의 분리와 세속화는 자본의 이기적 욕망이 낳은 것이다. 신성은 자본이 자라기에는 너무 불편하다. 하여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통해 자본의 경계를 획정한 근대 국민국가를 과연 진보라 말할 수 있는가?

 

동유럽의 발칸에서 소련이 무너지자 인종과 민족주의가 발호하여 대학살이 있었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 13억 인구 56민족이 저마다의 민족주의를 굴기하여 독립하는 것은 진보인가? 한족의 중국과 56민족이 어우러진 중화제국은 다르다.

몽골제국과 청제국은 다수의 민족과 문명을 통섭한 국가였다. 오늘의 중국도 중화제국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중화제국의 원리가 대영제국할 때의 제국주의와 동일한 것인가?

일본의 영미식 자본주의를 척결하자는 대동아공영론은 철천지원수의 이론이라고 여기면서 한족의 땅보다 더 큰 만주, 내몽골, 신장, 티베트 등을 점령 또는 융화시키는 중화인민공화국을 미제국주의 할 때의 미제처럼 중제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반절은 서구, 반절은 아시아적 생각이다.

다시 돌아가 내 나라에서 근세 120여 년을 숨 가쁘게 내달려온 저항정신의 실체는 무엇인가? 과연 '산업화의 발전과 민주화'라는 서세동점의 근대적 가치관이 내 나라의 인민을 120년의 전쟁으로 밀어냈을까? '산업화의 발전과 민주화'로 조명되는 근대 인식에 의심을 품는다.

120여 년의 투쟁을 계급투쟁 이론으로 해석하는 유물사관도 못마땅하다. 근대 초의 민족주의가 근대 국민국가를 세우고 사회주의가 노동자의 각성과 불평등을 제압하는 진보의 역할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하여 새로이 보는 곳에서 내 나라의 개별성, 특수성의 실체는 명확해지지 않을까? 그것들의 양질전화(量質轉化)의 변증(辨證)을 통한 그 무엇은 무엇일까? 한국 근대 120년의 뜻은 무엇인가? 

 

   
동학농민혁명군 장흥부 덕도 탈출도 / 박홍규 화백 판화. 2015.

오늘의 생각은 동과 서를 바꾸는 또는 좌우를 바꾸는 전환인가? 아니면 좌우 동서 고금을 통째로 뒤집는 반전인가? 반전이라면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아야 한다던 논리도 낡은 생각이 된다.

대동은 말할 수 없는가? 무릉도원, 샹그릴라, 율도국, 유토피아가 아니더라도 가능한 만큼의 지상의 낙원을 향해 같이 가는 '임을 위한 행진곡'의 대동은 여전히 '빼앗긴 남의 땅'이거나 '사라진 근대'인가? 법고창신하면 부활이고 르네상스이며 그 또한 창조의 반열이 분명할진데 오늘의 사유는 부박하기 짝이 없다.

120여 년 내 나라의 인민들이 쏟아져 나왔던 거리의 맥박은 무엇을 호출하고자 했던 것일까? 지리적으로 남북 분단뿐 아니라 생각도 남북 분단이다. 남쪽에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과 도시와 농촌이 분단되어 있다. 도대체 이 원인은 무엇일까...? 하여 다시 1894년의 동학으로 돌아간다.

동학(여기서 동학은 사상을 말하고, 동학혁명은 1894년의 일을 말한다.)의 학습 조직! 사대부의 인민화, 그대가 하늘인 인내천이 근대의 서구 민족주의 울타리의 국민국가가 아니라면? 그 사유가 국경이 없는 천하의 인내천이라면? 동학의 반외세가 민족주의가 아닌 나로서 남을 제압하는 것을 거부하는, 하여 나와 남 아타가 공생공존하는 그대가 하늘인 인내천의 세계였다면? 그것이 교리에 머물지 않고 생각이 실천으로 세계를 변혁하는 대동의 혁명 1894년의 전라도의 동학혁명이라면?

그런 것이라면 동학혁명은 쉽게 서구적 근대 민족주의 시각으로 반봉건 반외세라고 좁혀서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하여 동학이, 동학혁명이 전쟁, 빈부, 차별, 폭력 좌우의 현대에서 세계사적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음이다.

 

세계의 모든 혁명은 킬링필드의 학살이 있었다. 프랑스혁명, 러시아혁명, 중국혁명, 메이지유신, 베트남 혁명 등등 그 학살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혁명 이전의 지배자를 철저히 학살한다. 엥겔스가 말하지 않았어도 자동으로 새로운 지배세력의 독재이다. 

그런데 세계에서 유독 동학혁명만이 비록 일시적이었다 하더라도 구 지배세력과 협치를 했다. 프랑스의 1871년 3월 18일부터 5월 28일까지 72일간의 파리꼬뮌은 철저히 구악과 선을 그었다.

젊은 시절의 나는 패배한 파리코뮌일지라도 구악의 철저한 일소에 환호했고, 그것의 사회주의 혁명판인 프롤레타리아독재를 환호했다. 허나 지금의 나는 동학혁명의 집강소를 더 바람직하게 본다. 집강소는 혁명무력을 학살을 통한 혁명독재로 하지 않았다.

전라도에서만큼은 혁명무력의 우위 속에서 집강소의 새 체제 속으로 구지배세력을 포섭해 들였다. 동학혁명군의 규율에서도 구지배세력을 함부로 살상하지 말라고 하였다. 동학혁명의 구세력과의 협치 기구인 집강소, 전주화약을 잔존한 봉건성이라고 말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동학혁명의 폐정개혁안은 철저한 반봉건이었다. - 아시아의 왕조국가는 서구의 봉건제와 다르다. 이미 서구보다 훨씬 이전에 중국과 조선은 절대왕정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는 편의상 봉건이라는 말을 쓴다.

이러한 점이 실천으로서의 동학혁명이 가지는 전라도의 특수성이며 개별성이자 세계사적 공생공존 평화의 보편성이다. 이 평화의 보편성을 다시 한번 세계에 과시하니 2016년~2017년의 촛불이었다. 하여 체제 재편에서는 혁명이 아니지만 그 정신만큼은 혁명이다. 간디의 비폭력 불복종의 아힘사와는 궤를 달리하는 투쟁이다.

그 사유가 더 나아가 동학혁명이 추구하는 국가가 서구식 근대 국민국가가 아닌 다른 그 무엇이라면? 실현되지 않은 과거의 생각을 애닳아함이 아니라 법고창신으로 고금(古今)을 합작하자는 것이다.

우금치의 죽음이 세우자 했던 국가의 실체는 무엇인가? 허니 사대부의 나라 조선과 인내천 인민의 나라는 어떤 상관성이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실현되지 않은 생각의 나라에서 전봉준은 동아시아의 천하를 어떻게 봤을까?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이와 어떤 상관성이 있을까?

 

   
필자인 강주영 전북포스트 편집위원

1894년 전라도의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 김덕명, 이소사 등등은 중화의 천하와 일본의 대동아공영 천하와 다른 그 어떤 천하를 꿈꾸었을까? 이들의 천하성을 밝히면 전라도의 특수성이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사적 보편성을 가진 새로운 생각이 굴기하지 않을까?  

하여 천년 전라도의 새로운 일어섬이 동학과 광주와 촛불의 한길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 강주영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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