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특집 > JBpost 신년기획
2. 무엇을 기억하고 재창조할 것인가...?<신년기획>전라도 정도(定都) 천년...'동방의 등불'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강찬구 기자  |  phil620@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8.01.05  17:12:21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전우치는 신출귀몰한 사람이었다. 피리를 불며 구름을 타고 날아다녔다. 한번은 경복궁 위에 나타나 대궐의 금 들보를 올리라고 명했다. 옥황상제를 사칭했으므로 임금이 곧이 듣고 열두 자 금 들보를 만들어 바쳤다.

전우치는 이것을 들고 경남, 전남, 충남 등 삼남지역으로 내려와 손가락마디만큼 잘라서 궁핍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삼남 사람들은 이것으로 흉년을 견딜 수 있었다. 이내 전우치가 술법을 썼다는 사실을 임금이 알게 되었다. 전우치를 잡아들여 죽이고자 하였다.

전우치는 마지막 소원으로 그림을 그리게 해달라고 했다. 큰 종이에 금강산 일만 이천 봉과 산천을 그려 넣은 뒤 당나귀를 그렸다. 임금이 당나귀의 눈이 그려지지 않은 것을 이상해하며 물었다. 전우치가 때를 놓치지 않고 눈을 그려 넣는 순간 그림 속의 당나귀가 뛰어나와 전우치를 싣고 도망가 버렸다.

 

   
전라도 정년 천년인 2018년 새아침 광주 무등산의 해맞이.

 

<담양 금성산성의 전우치는 누구일까?>

영산강 상류에는 이런 내용의 설화들이 부지기수다. 단지 설화 속의 인물일까? 그렇지는 않다. 담양군지에는 전우치가 담양 전씨의 후손이라고 밝히고 있다. 본디 송도에서 태어나 도술에 능했지만 장성의 신거무와 같이 세상을 잘못 만나 옥살이를 했다고 한다.

담양군 수북면 황금리에 남아있는 전우치 전설을 그 근거로 삼는다. 담양 향교터가 남양 전씨 시조의 묘소가 있었다고도 하고 담양읍에는 그 후손이 산다고도 한다. 주목할 것은 고려 중기 흉년과 압제로 백성들이 궁핍해 있을 때 혜성처럼 나타난 영웅이 전우치라는 점이다.

마치 허균의 혁명사상과 그가 썼던 홍길동전을 떠올리게 한다. 전우치전도 물론 소설로 전한다. 지은이와 창작연대를 알 수 없는 국문소설이다. 조야집요, 대동야승, 어우야담, 지봉유설 등에 실려 있다. 이런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유포되었던 이유는 뭘까?

 

<이연년 형제의 백제 부흥운동과 실패>

이런 유형의 이야기들은 주로 국론이 분열되거나 정부에 대한 갈등들이 높아질 때 널리 확산된다. 전우치 이야기가 급속하게 확산되던 고려 중기, 지배층의 분열로 이자겸의 난, 묘청의 난 등이 발생하고 무신란으로 이어지게 된다.

고려가 건국된 지 200여년이 지난 후 다시 신라, 고구려, 백제 부흥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전우치가 만약 실존 캐릭터라면 누구라고 할 수 있을까? 대개 비슷한 시기에 이가당(李家黨)을 만들어 백제부흥을 꾀하던 백제도원수 이연년으로 해석하는 사례가 많다.

가혹한 수탈과 몽고의 침략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던 농민들에게 가렴주구를 없애며 몽고의 살육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일어난 변란이다. 거사의 출발지였던 원율현(지금의 담양군 용면 일대)의 인동사 절터와 그 주변에 3기의 백제계 석탑이 남아 있던 것으로 보아 이른바 남도사람들의 백제에 대한 감정을 알 수 있게 한다.

옛 백제에 대한 향수가 컸을 것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연년 형제가 당시 위기의식을 느끼던 농민들의 불만에 편승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야망을 이루고자 백제부흥의 기치를 내걸었다는 점은 비판의 여지가 크다.

어쨌든 전우치의 도술이나 의협 행각을 볼 때 백제부흥의 실패자 이연년에 대한 원율지역 주민들의 보상심리가 이 설화를 만들어냈을 것이라는 해석은 충분히 일리가 있다.

결과는 어떠했나? 처참하게 망하고 말았다. 이연년 형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라도라는 이름이 생겼던 고려 건국기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이른바 진 자들의 역사와 패배자들의 여러 캐릭터들이 나온다.

 

<지렁이로 남은 견훤과 피를 토하고 떨어져 죽은 영산강의 용>

가장 대표적인 이가 사실은 견훤이다. 견훤 이야기는 광주를 중심으로 지렁이 설화로 전해온다. 성씨는 이(李) 혹은 진(甄)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의 견훤 설화는 호랑이가 나타나 젖을 먹였다 해서 신이로움을 강조하지만 삼국유사의 기록을 비롯해 남도지역에서 전승되어 오는 설화의 대부분은 지렁이 이야기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장성지역에 전해오는 고산마을 설화는 좀 특이하다. 신라 말 한 부잣집 딸이 밤마다 이목구비가 준수한 청년과 동침을 했는데 딸 방에서 자고 가는 청년의 도포자락에 명주실 한 꾸리를 바늘로 꿰어 따라가 봤더니 장군굴 속의 커다란 거미였다는 줄거리다.

딸이 낳은 아이는 점점 자라면서 하는 짓이 거미와 같았다. 동네 사람들은 이 아이가 불태산이라 호명하는 거미의 정기를 받아 태어났다고 믿었다. 아이가 점점 자라 비장이 되더니 이윽고 진훤이라는 이름을 견훤으로 바꾸고 후백제를 세워 왕이 되었다. 왕건이 일관되게 용으로 표상되는 데 비해 견훤은 지렁이나 거미로 표현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설화마저도 역사의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는 것일까.

영산강변에는 용(龍)자가 들어간 지명들이 무수하게 있고 관련한 설화들이 있다. 영산강의 시원이라는 용소 설화가 대표적이다. 담양으로 부임한 부사가 명소를 둘러보다 가마골에 가려했으나 어느 노인이 꿈에 나와 현몽하기를 자신이 용인데 내일 승천하는 날이기 때문에 오지 말라고 부탁을 했다. 부사는 호기심이 일어 꿈을 무시하고 가마골에 올랐다.

용소에서 하얀 연기를 뿜으며 용이 승천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이윽고 용은 하늘로 올라가다 떨어져 죽고 부사는 용의 독에 중독되어 죽었다. 용은 왜 죽었을까? 이때의 용은 누구를 상징하는 것일까? 문제는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지금 여기에 끄집어 낼 것인가에 있다.

 

<고려의 건국과 전라도의 탄생>

왕건이 고려를 건국한 것은 지금의 나주 세력이 뒷받침해주었기 때문이다. 나주 완사천에서 물을 건냈던 오씨 처자를 중심으로 그 아비 오다련과 세력들이 선택한 새로운 세상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꿈 꾼 고려는 어떤 세상이었을까. 영산강이 낳은 아들 무(武)를 고려 2대 왕으로 만들었으니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까? 왕건은 고려를 세우고 나서 전국의 관할지를 재구성한다. 도선국사의 비보풍수도 한 몫 거들었다.

고려초에 12목을 설치했다. 전라도 지역에는 전주목(全州牧), 나주목(羅州牧), 승주목(昇州牧)을 두었다. 승주목이 지금의 순천이다. 신라 때 지금의 광주인 무진주를 중심으로 삼았다면 고려 건국 이후 왕건을 중심으로 하는 신세력이 나주에 그 중심을 세우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2대왕 혜종이 재위 2년 만에 정종으로 바뀌고 정종 재위 4년 만에 그의 동생 광종으로 왕위가 바뀐다. 이후 경종, 성종 대에 이르러 전라북도 일대를 강남도(江南道), 전라남도 일대를 해양도(海陽道)로 바꾸었다. 이윽고 현종 9년인 1018년에 강남도와 해양도를 합쳐 전라주도(全羅州道)를 설치했다.

전주와 나주의 첫 글자를 딴 것이 지금의 전라도라는 이름이 탄생하게 된 내력이다. 당시 전라도는 2목(牧), 2부(府), 18군(郡), 82현(縣)이었다.

 

<전라도 탄생 천년의 화두와 어젠다>

올해 2018년은 전라도라는 이름이 생긴 1018년으로부터 천년이 되는 해다. 나주 금성을 중심으로 융기했던 세력들의 뒷받침을 받아 왕건은 고려라는 나라를 세울 수가 있었다.

전라도 각 곳에서 이를 기념 하네 승계하네 하면서 각종 기획들을 하고 있다. 주로 전라도의 인물들을 다시 소환하며 그 의미를 묻는 방식들이다. 다 좋다. 문제는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재창조할 것인지에 있다.

역사의 기록만으로 그 많은 행간들을 다 읽어내기는 어렵다. 기록되지 아니한 역사 곧 설화를 거론하는 이유가 여기 있을 것이다. 담양 용소설화 혹은 장성이나 영산강변의 지렁이설화처럼 견훤을 은유하는 기억들이 있다.

고려 중기 백제의 중흥을 도모하다 사라진 이연년의 투사라고 하는 전우치 설화도 있다. 정도 천년을 기념하는 맥락에서라면 그래서 왕건과 고려만을 기념의 대상으로만 삼는다면 놓치고 갈 수밖에 없는 캐릭터들이다.

가까이는 5.18로부터 동학으로 거슬러 오르기까지 수많은 화두들이 거론되고 아젠다들이 세워진다. 뜬구름 같은 이야기도 있고 속 보이는 정치적 구호도 있다. 문제는 정도천년이 되는 전라도, 즉 남도가 특별하거나 특수한 의미여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어디 천년 되는 장소가 전라도뿐이겠는가. 그래서다. 내뱉는 수많은 화두들이 오로지 전라도만을 위하고 전라도만을 특성 짓는 것들이라면 그 이면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필시 꿍꿍이속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올 천년의 전라도를 위하여>

우리가 맞는 다음 천년은 오히려 이 전라도 속에서 한반도를 관통하는 보편성을 찾아내는 것 아닐까.

마치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처단하면서도 동양평화론을 그 중심에 뒀던 것처럼. 충청도에서도 경기도에서도 한양에서도 혹은 황해와 평안도에서도 동의하고 공감할 수 있는 그런 보편성을... 

예컨대 전라도를 넘어 동아시아의 평화 메시지로 파급되어 나가는 비전 같은 것 말이다. 동학에서 동아시아 평화 기획을 뽑아내고, 5.18로 세계평화의 메시지를 끄집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일 것이다.

천 년 전에는 신라의 무진주가 고려의 나주로 중심을 옮겼다. 또 새로운 천년을 시작하는 지금을 돌아본다. 나주에서 다시 광주나 전주로 그 중심을 옮겨 온지 오래다. 옛 영화를 상기하는 것은 자기성찰을 토대로 했을 때 의미를 갖는 것이다.

시대가 변하면 사람도 변하고 공간 또한 변한다. 국호를 바꾸고 도읍지를 옮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만약 전라도가 우리들만의 전라도라면 필경 그 중심은 다른 곳으로 옮겨갈 것이다. 역사가 그를 증명해주지 않는가.

상고해 보건대 도선국사가 도갑사를 지어 전라도 땅을 비보하거나 왕건의 손을 들어 준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정도 천년의 의미가 사실은 새로 올 천년이라는 점에서 남도의 정신으로 미래를 보듬는 아젠다를 내세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할 것이다.

 

*남도인문학 TIP

<흥룡동(興龍洞) 완사천(浣紗川)에서 빨래하던 오 처자와 금강의 세력들>

완사천에서 왕건에게 물을 건넸던 오처자의 아비는 오다련이다. 오다련이 어느 날 밤에 꿈을 꾸었다. 지금의 영산강인 금강 하구에 누런 금빛의 황룡 한 마리가 구름을 타고 오는 꿈이었다. 날아오더니 이내 자신의 몸속으로 들어와 앉아버렸다.

길몽이었다. 왕건에게 딸을 시집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꿈 이야기는 좀 더 거슬러 올라간다. 왕건이 파군교에서 견훤의 군대를 물리친 것도 백발노인이 나타나 선몽 해준 꿈과 관련되어 있다. 지명이 지금의 꿈여울(夢灘)이 된 이유다.

오처자의 아비 오다련은 나주 금성의 권세가였다. 견훤과의 전쟁에서 왕건을 도와 고려 건국의 일등공신에 되는 세력들이다. 나주 금성의 지원을 받아 왕건은 승승장구했다. 모시고 있던 궁예를 물리치고 지휘자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 종국에는 견훤세력을 모두 물리치고 고려를 건국할 수 있었다.

장화왕후 오씨가 낳은 아들 이름이 무(武)로 고려 2대 왕이 된 혜종이다. 나주를 비롯한 무안, 영암 등 영산강 지역에서 여러 가지 버전으로 전해오는 설화들이다. 허황되고 과장된 방식으로 만들어졌지만 그 행간을 읽게 되면 미처 기록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숨어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기록이 대개 이긴 자들을 편드는 역사라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오는 이야기는 진자들을 편드는 역사라 할 수 있다. / 이윤선 남도민속학회장 

 

   
이 글을 쓴 이윤선 남도민속학회장은 전남일보에 남도인문학을 연재하고 있다. 부줏머리갯가에서부터 고금의 역사며 진도 북춤에 이르기까지 샅샅이 살피고 있다. 전라도성에서 한국성 나아가 동아시아적 보편성을 획득하는 전라도르네상스 글쓰기이다. 이윤선 교수는 중국, 일본, 베트남과 내 나라에서 한국학을 강의한다. 남도민속학회 회장, 문화재청 전문위원이며, 진도 북춤과 판소리에 능한 예인이다. / 

 

*이 글은 이윤선 남도민속학회장이 전남일보에 신년을 맞아 기고한 글이다. 연재하고 있는 남도인문학의 72회째 글이다. 전북포스트는 이윤선 회장과 전남일보의 허락을 받아 이 글을 싣는다. 

강찬구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560-022)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동성당길 13. 호운빌딩 3층  |  대표전화 : 063)231-6502  |  등록번호 : 전라북도 아 00076  |  발행인·편집인 : 강찬구
등록 및 발행일 : 2014년 8월 7일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현영
Copyright © 2018 전북포스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