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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정도 천 년인 2018년이 밝았다. 전라도는 1018년(고려 현종 9년) 전주 중심 '강남도'와 나주 중심 '해양도'가 하나로 개편되면서 전주와 나주의 첫 글자를 따서 탄생했다. 새해 해맞이를 하면서 전라도 중흥(르네상스-Renaissance)을 고심해 보았다.
무엇으로 중흥할 것인가? 중흥은 오래된 근대의 가치를 뒤쫒는 게 아니라 근대의 반전이어야겠다. 반전이되 전라도다워야 하고 천하로 갈 수 있어야겠다. 식민지로 단절되고 서구식 근대화로 분단된 고금(古今)을 합작하고 동서를 변증(辨證)하여야 한다. 그래야 중흥이라 할 만하다. 공항이나 항만, 금융빌딩 등이 아니다. 전라도 노래나 소리 몇 곡 하는 것이 아니다.
내 나라에서 근대는 서구의 근대적 가치인 진보, 성장, 발전의 패러다임을 국민국가를 통해 이루었다. 산업화와 정치민주화도 이루었다. 허나 집에서는 가족이 민주화되었으나 이끌어 가는 가장, 아버지가 사라진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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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1월 1일 광주시 동구 5·18민주광장 앞 민주의 종각에서 3도가 참거한 가운데 열린 '2018년 전라도 천년맞이 타종식' . |
민주화는 다른 말로 백가쟁명하는 혼돈의 다른 이름이다. 가족에서 봉건적 가부장을 말하고 나라에서는 파시즘적 중심을 말함이 아니다. 개인에게서나 나라에서나 중심의 가치가 필요함을 말한다. 산업화와 민주화가 더 이상 시대 가치라 할 수 없다.
민주 대 반민주, 진보 대 보수는 낡은 구도이다. 민주대연합 이런 이야기 그만하자. 새로운 가치로 보수와 진보가 연대되면 수구반동을 주저앉힐 수 있다. 한때 수구적 반동의 역주행이 있었으나 촛불이 순주행으로 돌려놓았다. 허나 성장의 열매는 소수에 집중되고 사회화되지 못했다.
돌이켜 보면 이식된 근대화로 고금의 분단이 생겼다. 하여 우리는 한국인이 되지 못하고 서구인이 되었다. 복고적 국수나 민족을 말함이 아니다. 물질적 세속이 발전하고 서구적 민주화를 이루었으나 동아시아다운 천하대동(天下大同)의 민주를 잃었다.
진보, 발전, 성장이되 천하대동의 그것이어야 했다. 서구적 근대화가 자본주의에서나 사회주의 양면에서 새 천년의 시대를 가늠하여 나갈 인문(人文)이 부족해진 시대이다. 그러니 천 년 정도 전라도를 말함이 속 빈 강정 같다.
아시아다운 우리 식 근대의 생각이 없었던 게 아니다. 실학의 계몽을 거쳐 그대가 하늘인 사인여천(事人如天), 후천개벽(後天開闢)의 동학혁명이 있었다. 전봉준과 김옥균이 만나지는 못하였으나 전라감사 김학진과 전봉준이 만났다.
우국지사 매천 황현이 오하기문(梧下紀聞)에서 "감사(김학진)의 머리는 해 아래에 매달리고, 적괴(전봉준)의 시체는 달 아래서 찢길 것” 이라며 저주했던 만남이었다. 그의 우국은 양반 세계의 우국이었을 뿐이다.
집강소의 민관상화(民官相和)는 오늘날 운위되는 협치의 원조였다. 동아시아적 민주화와 근대화의 길이었다. 동학은 실로 몽골제국의 고려 오백 년과 중화제국의 조선 오백 년을 지나온 천년기획이었다.
천년기획 동학혁명이 진압되면서 조선은 일본을 통해 이식된 서구식 근대로 끌려갔다. 식민사관을 없앤다 하여 일제에 의한 조선의 근대화를 부인할 수는 없다. 다만 강요된 서구적 근대화로 가게 되어 고금이 분단되었다. 남북이 분단되었다. 잘못 꿴 단추였다. 좌절된 동학혁명의 결과이다.
1894년의 동학혁명에서 1953년의 한국전쟁까지 약 1천만 명이 죽었다. 동학, 의병, 독립운동, 중일전쟁, 남아시아 전쟁, 동북아시아전쟁, 한국전쟁을 따로 볼 수 없다. 나는 이 전쟁을 '60년 전쟁'으로 부른다. 오늘의 근대화와 민주화는 '60년 전쟁' 천만 명의 주검 위에 핀 꽃이다. 한국전쟁 후에는 베트남에 가서 죽었다.
서구 제국의 기움은 명확하다. 이는 서구의 몰락을 말하는 게 아니라 아시아의 아시아다운 일어섬을 말한다. 운동장이 기울고 있다. 아시아의 새로운 굴기가 유럽과 미국도 살리리라 예측한다. 아시아의 새로운 굴기는 서구가 걸은 '남을 죽여 내가 살자'는 패도(覇道)가 아니라, '모두가 사는' 왕도(王道)의 길이다. 서구의 근대가 말한 진보, 성장, 발전이 대개가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나 패도의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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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도 정도 1000년 타종식후 기념 사진 (앞줄 왼쪽 두번째부터 오른쪽으로 이재영 전남지사 권한대행, 윤장현 광주시장, 김송일 전북도 행정부지사) |
왕도가 갈 유라시아의 운동장을 보자. 이슬람 국가와 러시아를 포함한 상하이협력기구는 이미 나토를 능가한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은 국제통화기금에 필적한다. 이 기구에는 EU의 국가도 가입되어 있다. 아세안은 이미 아시아형 EU로 자리잡은 지 오래이다.
시진핑이 말한 일대일로(一帶一路)는 남중국해 인도양과 유라시아대륙 전체를 관통한다. 대항해시대의 유럽 제국주의를 반전시키고 있다. 반전시키되 우승열패, 약육강식이 아닌 천하대동의 신실크로드이다. 화평굴기 화해세계(和平崛起 和諧世界)이다.
새뮤얼 헌팅턴이 말한 문명의 충돌은 금세기의 유라시아에서는 없다. 이슬람, 불교, 유교, 동방정교가 서로 통섭하며 새 천년을 열어 간다. 미국과 유럽이 배설해 놓은 극단주의가 있으나 새 천년의 길을 못 막는다. 유럽과 미국이 패도로서 치니 치는 것이다.
이 일대일로의 화해세계에서 한반도는 아시아의 절해고도가 될 운명에 처해 있다고 하면 과장된 언사인가? 러중일미의 포위 속에 자강(自強)의 생각인 주체사상이 이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고립으로 몰아댄다. 한미일동맹에 묶인 대한민국은 아시아에서 한국다운 일어섬이 없다. 남북 모두 속국의 근대화에 묶여 있다.
속국의 근대화 처지에서 천하(天下)를 보니 보수니 진보니 하는 것도 참으로 좁다. 상상의 공동체인 민족에 기반한 근대 국민국가는 이제 한계에 부딪혔다. 값이 싼 저가항공이 전 세계를 실제의 네트워크로 연결한다. 이제 지구적 시민이 출현한다. 유목시민의 출현은 더 가속화 될 것이다.
개인의 민족과 국가에의 연결은 느슨해진다. 국민, 영토, 주권이라는 근대 국가의 3요소가 크게 흔들린다. 정치적 정체성인 국적이 개인을 크게 좌우하지 않는다.
유목시민화 될수록 국가보다는 머무는 곳의 토착성이 중요해진다. 토착성이 마천루의 뉴욕이든, 모로코의 사막이든, 전주의 한옥마을이든... 지구적 유목시민의 선택일 뿐이다.
모로코 국가의 정체성이 아니라 사막의 토착성을 즐긴다. 부탄이 사회주의이든 자본주의이든 불교이든 관계 없다. 부탄의 생태성과 전통적 공동체성에 매료된다. 이런 점에서 마을이 국가를 대체해 간다. 지구적 유목시민은 마을과 마을을 엮어 상상의 나라를 현실의 공동체로 만든다.
마을 역시 유목적이다. 실제의 주거 마을 뿐 아니라 이동하는 상해나 런던의 방문지도 마을이다. 인터넷망의 어떤 장소도 마을이다. 토착성은 세계적이며 유목적이며 동시에 미시적이다.
세계적 유목 시민의 보편적 가치는 진보, 발전, 성장이나 자본주의나 사회주의에 있지 않다. 각자의 가치가 각개약진한다. 페미니즘, 생태, 자유, 평등, 사랑, 자비, 평화, 진보, 보수, 좌우, 사회주의, 자본주의... 등등이 네트워크가 된다.
아시아의 천하가 되살아난다. 아시아의 인문이 되살아난다. 아시아의 천하 속에서 인류는 평등했다. 개인과 개인 간의 평등 뿐 아니라 개인과 천하도 평등하였다. 마르크스의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체에서의 평등을 넘는 우주적 평등이다. 천인합일(天人合一)의 평등이다.
서구의 근대 국민국가는 이런 동아시아적 사고를 산업화와 무력으로 깨버렸다. 제 국가와 민족만 섬기고 천하를 버리고 자기 파괴적인 무한경쟁이었다. 그 무한경쟁의 세계화가 역설적이게도 지구적 유목시민을 출현시키며 머무는 곳의 토착성을 전 지구에 환류시킨다.
서구에서 개인은 자연이나 타인과 분리되었고 신에 종속되었다. 동아시아에서 개인은 자아(自我)였으며, 자아를 주체로 하지 않고 우주적 자아 무아(無我)로 가려 했다. 개인주의가 아니고 천인합일의 천하주의였다.
서구에서는 "신이시여 Oh! My God" 라고 하고, 우리는 "하늘이 무너진다"라고 한다. 서구식 근대화에서 니이체는 "신이 죽었다"고 했고 우리는 "천하가 죽었다" 할 수 있다.
진보니 보수니 하는 것도 다 서구의 개인주의적이며 국가주의적 사고에서 온 것이다.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사고이다. 서구라 하여 버리자는 속 좁음이 아니다. 천하를 다시 새기자는 것이다. 머무는 곳의 토착성에서 국가와 민족을 넘어 천하를 회복하자는 것이다. 토착적 존재이자 초월성이라는 천하적 존재가 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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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도 천년 엠블렘. |
생각해 보니 전주 한옥마을에 천하가 있는가? 그대가 하늘인 사인여천이 있는가? 정여립의 '천하의 주인이 따로 있는가'라는 천하공물(天下公物)이 있는가? 기획상품인 슬로푸드나 관광 한옥마을이나 동학혁명 지도자 몇의 동상으로 전라도의 새 천년을 말할 수 없다.
태인의 상춘곡, 담양의 가사, 판소리의 서사를 곧바로 내세우는 것은 복고의 문화이고 소수의 매니아에 지나지 않는다. 천하를 얻을 수 없다. 동학, 전봉준, 김개남, 이소사를 말하되 결연하고 전투적이며, 우국충정적인 좁은 혁명의 서사로는 안 되겠다.
혁명이되 1894년과 2018년을 합작하는 인문의 혁명이고 아시아로 나가 천하를 얻는 보편성이 있어야겠다. 좁은 역사문화공원에 갇힌 1894년의 복기여서는 안 되겠다.
개벽의 사상을 풍부히 지닌 전라도에서 고금합작과 동과 서를 변증한 거대한 담론이 시작되어야 한다. 새 천년의 새로운 굴기는 고금의 합작에서 서세동점을 반전하는 사유에서, 인문의 르네상스에서 일어나야 한다.
우리의 마을과 도시가 전라도의 토착성에 착근하면서 일대일로의 천하로 가야 한다. 고금의 합작과 동서의 변증으로 뿌리가 깊으면 좌우나 보수 진보에 흔들리지 않고 능히 천년을 갈 만하리다. 그때서야 판소리도 살고 동학도 살고 전라도가 융성해진다. 그때서야 명창들의 소리가 아시아를 울리고 천하를 얻으리다.
힌두, 이슬람, 동방정교, 공맹을 명창들의 판소리로 듣되 오늘의 소리여야 하겠다. 그래야 전주 전북의 소리 축제가 천하를 얻는다. 근대라 하지만 신성국가라할 만한 말레이시아, 인도, 아랍, 러시아가 감탄케 할려면 그들의 정신을 지배하는 신성의 소리와 동학의 울림을 교류시켜야겠다. 전라도의 소재 동학이고 판소리이되 소재의 단순 복기나 나열이어서는 곤란하다.
우리의 도시가 몽골인과 서역 색목인이 바글거리던 고려의 개경이 되어야 한다. 전라도의 토착성을 면밀히 발굴하고 중흥해서 천하와 결합해야 한다. 유라시아와 이슬람, 힌두교, 동방정교 연구를 벌여야 한다. 유라시아학을 촉진하고 지역전문가를 육성해야 한다. 국제행사 유치나 관광진흥을 뛰어넘는 입체적이고 다면적인 전략을 구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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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인 강주영 전북포스트 편집위원 |
향교에 다시 글 읽는 소리를 울려 패도가 아닌 왕도의 신유학을 만나야 한다. 우즈베키스탄, 네팔, 베트남, 방글라데시아에서 온 이주노동자를 다문화라는 이름으로 종속하지 말고, 그들이 그들이게 하여 전라도의 도시가 국제적 네트워크 도시가 되게 해야 한다. 자성하고 자강하며 고금을 합작하고 유라시아의 천하로 가야 한다.
전라도의 인문을 중흥하고 새 천년을 굴기해야 한다. 전라도 전체의 동학혁명을 연결하고 현대화된 네트워크를 가동해야 한다. 가칭 전라도 동학 네트워크를 현존의 천도교단과는 다른 차원에서 도모해볼 만하다. 서세동점의 진보, 보수, 발전, 성장을 화평하는 반전의 시대에서 새로이 정명(正名)해야 한다.
나는 이 프로젝트를 인도의 타고르가 동학을 보고 말한 '동방의 등불'이라 정명한다. 감히 말하건데 전라도는 동방의 등불이 될 수 있다. 몇 십 년은 족히 걸려야 할 크고 넓은 길이다. 문인, 예술, 학자, 연구자, 공학, 엔지니어, 남녀노소가 모두 함께 해야 할 일이다. 지금이라도 시작하자. / 강주영 편집위원
*편집자주
올해 2018년은 전라도 정도(定都) 천년이 되는 해다. 1018년(고려 현종 9년) 전주 중심 '강남도'와 나주 중심 '해양도'가 하나로 개편되면서 전주와 나주의 첫 글자를 따서 '전라도'가 탄생했다. 날짜로는 10월18일이다. 전라도 천년을 앞두고 전북과 전남, 광주시는 각각 전라도 르네상스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전북포스트는 전라도 정도 천년을 맞아 신년기획 '전라도 정도 천년...'동방의 등불'프로젝트'를 제안한다. 전라도 천년을 맞아 공항이나 항만, 금융빌딩, 그리고 전라도 노래나 소리 몇 곡 발굴하는 차원의 르네상스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취지에서 제안하는 것이다. 동아시아적 시각에서 전라도 천년을 해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라도다움을 정립해야 비로소 전라도는 '동방의 등불'로 되살아나는 것이다.
이 첫번째 글은 강주영 편집위원이 발제 형식으로 풀었다. 우리 모두의 머리를 모아 전라도 천년의 의의를 되새기고, 새로운 기치를 세우자는 의지가 크다. 어느 누구라도 이와 관련된 이견을 낼 수 있고, 토론에 참여할 수 있다. 건전한 논쟁을 통해 전라도 정도 천년이 더욱 빛나기를 기대한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