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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동학역사문화공원 천천히 가야 한다. - 강주영
강주영 편집위원  |  kjyn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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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29  08:4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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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한옥마을 왕의 뜰 경기전에는 겨울이 찬바람에 흔들리고, 백성의 골목 동문길에는 막걸리 냄새가 바람에 날렸다. 길의 경계에서 겨울이 깊어져 간다.

감영로, 동문길, 태조로, 은행로, 충경로 길들은 왕으로만 통하고 있었다. 백성에게로 가는 전봉준로나 김개남로(이 길은 소로에 있다.) 집강로 등은 없었다. 이 길들에서 동학혁명은 단지 추모의 역사에 지나지 않는다. 

 

   
강주영 전북포스트 편집위원

1894년 동학(東學)혁명은 중화제국에 속한 조선이 독립하는 깃발이었다. 동학이 위대하게 기억되어야 하는 것은 수탈에 맞선 민중혁명이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리 좁게 볼 수 없다. 

고려의 몽골제국과 조선의 중화제국으로부터의 새로운 동아시아적 길이었다. 고려와 조선을 거친 천년 동안의 회심의 기획이었다. 중화를 새롭게 이어낸 동아시아의 새 빛이었다. 포스트 몽골제국, 포스트 중화의 세계였다.

동학은 서구의 근대국민국가를 받아들인 일본과 다른 행보였다.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를 중화제국의 주인으로 받아들이기를 주저했던 조선사대부의 소중화주의나, 대청제국의 중화세계와도 달랐다. 동아시아에서 중화세계는 중국과는 다른 서로 별개의 것이다.

조선은 중국이 아니지만 중화제국의 일원이었다. 조선, 몽골, 신장, 인도차이나, 티벳 등등이 중화제국을 이루고 있었다. 문화적 속국이니 정치적 속국이니 하는 것은 공맹을 중국에 한정하기 때문이다. 동학은 유학의 조선인민화이기도 한 것이다. 서구와 다른 동아시아적 근대화, 민주화의 길이었다.

 

만세일계(萬世一系) 천황의 나라를 자처하는 사무라이의 국가 일본은 중화의 세계 밖에 있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통해 서구의 근대국민국가 이념을 받아들이고 수립했다. 일본의 대동아 공영론은 서구 근대국민국가의 동아시아적 침략이었다.

해방된 조선은 남과 북 모두 일본처럼 서구 근대화의 길을 따라갔다. 남은 미국자본주의이고 하나는 서구적 소련사회주의였다. 북이 주체사상으로 자기 길을 간다고는 하나 중소와 미일의 포위 속에서 나온 자구책이지 동아시아적 보편성을 가진 것이 아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정치민주화와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다고는 하나 속빈 강정에 불과하다. 오천년 역사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타고르가 동방의 등불이라한 것은 동학의 사인여천(事人如天)세계였다. 양반도 상놈도 카스트도 없는 세계, 오늘로 말하면 전태일도 이재용도 없는 대동(大同)세계이다. 흰 옷 입은 조선이 아니었다. 사인여천은 동아시아적 보편성을 가진 위대한 기획이었다. 

 

동학은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 최경선, 김덕명, 송여립 등등 훌륭한 몇 장군의 복기가 아니다. 동아시아적 대동의 얼굴로서 복원되어야 한다. 돈벌이 관광의 기획이어서는 좁다. 전라도의 동학이어서도 좁다.

동학은 전봉준과 전태일이 만나고 일대일로(一帶一路)의 길에서 동아시아 인민을 만나는 21세기 백년의 기획이어야 한다. 전쟁과 폭력이 없으며 부자와 가난한 자도 남자와 여자도 없는 국가와 국민도 없는 대동의 세계여야 한다. 

전주 동학역사문화공원은 동아시아 인민을 만나는 21세기 백년의 기획이어야 한다. 천천히 가야한다. / 강주영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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