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지록위마(指鹿爲馬)'를 선정했다. 교수신문은 해마다 그 해에 적절한 사자성어를 발표한다. ‘지록위마’는 교수신문이 아니어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올해 가장 많이 등장한 사자성어일 것이다. 새누리당 중진 의원까지 ‘지록위마’를 언급했다. 각자 해석을 달리하고 있지만 거짓과 억지가 난무한 한 해였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강찬구 전북포스트 발행인

‘지록위마’를 직역하면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는 말이다. ‘사슴을 사슴이라 하지 못하는’ 상황을 얘기한다. 아랫것들이 윗사람을 속이고 농락하여 권세를 함부로 휘두르는 방자한 행동을 일컫는다. 오늘날 장기판으로 환생해 자손만대 전승되는 ‘초한지(楚漢志)’에 나오는 말이다.

중국 중원을 처음으로 통일한 진시황에게는 천하의 간신인 환관 ‘조고’가 있었다. ‘불로장생’에 집착하던 진시황이 방술사들로부터 ‘현장지도가 불로장생의 길’이라는 얘기를 듣고 순행길에 객사하자 계략을 꾸며 2세 황제로 지목된 ‘부소’를 자결하게 한다. 대신 황위에 앉힌 것이 둘째아들 ‘호해’다. 호해는 좀 모자라는 인물로, 조고로서는 ‘요리’하기가 쉬운 인물이다.

조고는 호해를 아방궁에 놓고 ‘주지육림’에 빠지게 한다. 정사에는 등한시 하도록 하고, 자신이 문고리를 잡은 것이다. 모든 문서는 조고의 손을 거쳐야 했으며, 조고의 뜻대로 처리됐다. 다른 신하들도 이 사실을 알면서도 조고를 어찌할 수가 없었다.

하루는 조고가 호해에게 사슴을 바치며, ‘말입니다’라고 이른다. 호해가 ‘어찌 사슴을 말이라고 하는가?’라고 반문하자 조고는 신하들에게 묻는다. 이미 조고의 위세에 오갈이 든 신하들은 감히 사슴이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말’이라고 답을 한다. 호해를 허수아비로 만들어 놓고, 자신의 위세를 과시한 것이다.

간신 조고는 진시황에게는 몸을 바치는 충신이었으나 그가 죽은 뒤에는 권력욕을 갖고 정사를 농락했다. 결국 그도 3세 황제인 자영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이런 와중에 진나라의 국세는 기울었다. 진시황이 이룬 천하통일은 전국에서 일어나는 반란의 불길에 휩싸여 불과 15년만에 막을 내리게 된다.

교수신문에 이 고사성어를 추천한 곽복선 경성대 중국통상학과 교수는 "2014년은 수많은 사슴들이 말로 바뀐 한 해였다."며 " 우리는 ‘말’만 보았지 ‘말’의 본 모습은 보지 못했다. 사회 어느 구석에서도 말의 진짜 모습은 볼 수 없었다."고 여운을 남겼다.

소설가 이외수씨 또한 SNS를 통해 환자복을 입은 사진과 함께 "저는 초지일관 개쉐이를 개쉐이라고 말하면서 살겠습니다"라며 비꼬았다.

‘지록위마’는 유난히 다사다난했던 2014년의 대한민국에 딱 들어맞는 고사성어가 되고 있다. 권력자의 눈과 귀를 가린 허세들이 호가호위하면서 국사를 농단했다. 오죽하면 ‘십상시’니 ‘문고리 권력’이니 하는 유치한 단어들이 난무했겠는가...?

처절했던 한 해를 보내며 우리 모두가 가슴으로 되씹어야 할 경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