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추워지는 11월 하순이 되면 가정마다 김장을 했는데 요즘에는 집집마다 김장하는 모습 보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예전에는 시집가는 딸에게 김장 담는 법을 먼저 가르쳤다고 하는데, 요즘엔 씨알도 안 먹히는 일이 된 듯싶다. 맞벌이로 바쁜 탓에 김장을 포기한 '김포족'이 늘고 있고 온라인으로 김장을 주문하는 ‘포장김치족’이 급증하는 등 김장철 풍경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박장우 전북포스트 주필

한 김장관련 업체가 주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올해 김장 계획 조사에서 주부 55%는 김장을 안 한다고 밝혔다. 지난해보다 8% 포인트나 늘어난 수치다. 김장을 하더라도 20포기 이하로 하겠다는 주부들이 많았다.

김장을 대하는 세대간 인식변화도 재미있는 것 같다. 젊은층의 경우 자신의 노력과 시간 투자를 고려해 김장을 ‘금장’이라고 여기며 차라리 사다 먹는게 싸다 라고 생각한다.

노년층도 손자손녀를 맡아 키우는 황혼육아가 늘면서 한때 당연했던 ‘황혼김장’이 이젠 짜증나는 일이 되고 말았다.

김장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한다. 1박2일 행사에서 당일치기가 됐다. 배추를 전날 사서 씻어서 절였다가 다음날 김장하는 것에서, 절임배추를 사서 담그는 게 보통이 됐다.

언론에 전해지는 요즘 김장 소식을 들으면서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김포족하면 우리 애들 엄마는 선구자인 셈이다.

결혼 생활 30년이 넘었지만 집에서 김장한 경험은 서너번 밖에 안 된다. 물론 그것도 시중에서 절임배추 사다가 말이다.

한때는 남들이 알까봐 신경도 쓰인 적이 있었는데 이젠 김포족이 절반을 넘었다니 우리도 보통 가정은 된 것 같은 생각도 없지 않다. 

우리 집 김장은 상당 기간 처형이 해주곤 했는데 최근 들어서는 전문업체를 이용한다. 4-5년 전에는 딸애들 결혼을 의식해서인지 집에서 직접 김장을 담겠다고 해서 잔뜩 기대도 했었다.

물론 집에서 김장을 담그면 무엇이라도 도와줘야 하니까 귀찮기는 하다. 그래도 딸애들 교육이라도 되니까 싫지 않았는데 이젠 직접 김장 담는 것은 가망 없는 일이 된 것 같다. 세상 풍속이 그렇다니까 더욱 말이다.

맞벌이 부인을 둔 친구들끼리 술을 마시다 보면 아내 흉보는 일도 빠지지 않는다. 전부 다는 아니지만 상당수 집안에서 음식이 부실한 느낌이 없지 않다. 물론 부인들도 돈 버느라 힘들겠지만...

친구들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반찬을 잘 못하는 부인들은 대부분 ‘미원’ 핑계를 댄다. “음식점에서는 미원을 많이 넣어 맛있게 만든다”느니 “미원에 중독된 입이라 미원이 들어가지 않으면 맛이 없게 된다”느니 하고 말이다. 그래서 일부 짓궂은 친구들은 “미원을 포대로 사다 줄테니까 음식만 맛있게 만들어 보라”고 놀려대기도 했다는 것이다.

김장 소식을 전해 들으면서 두 가지 생각을 했다. 하나는 ‘김포족’이란 신조어고 다른 하나는 ‘풍속도 변화’다.

텔레비전 방송에서 ‘김포족’ 이라 해서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했다. 김장을 포기한 족속이란 해설까지 듣고 나서 겨우 알아들었다.

요즘 이렇게 문장의 낱말 앞 글자만 딴 신조어가 적지 않다. 한땐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 웃찾사(웃음을 찾는 사람들) 등이 유행했지만 지금은 별의별 신조어가 다 등장한다. 젊은이들은 어린이도서관 조차 ‘어도’라고 부른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나라 말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도 초래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인 것이다. 만약 하나의 단어조차 줄여 사용하는 바람까지 불기라도 한다면 정말 혼란스럽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풍속도 변화인데 예전에는 상당기간을 두고 변했던 것들도 지금은 눈 깜짝할 사이에 바뀌는 것 아닌가 한다. 그리고 그런 변화에 적응해서 살아야 하는 젊은 세대들이 안쓰럽게 여겨지기고 하고 말이다.

요즘 청년 취업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닌데 20-30대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그런 취업을 서너번씩은 더 해야 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뜨고 지는 산업이 많고 업종별 생명력이 그만큼 짧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층을 김포족이라 부르곤 하는데 그들에겐 또 다른 역경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인 것이다. / 박장우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