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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모악산 단풍에서 얼어붙은 흑룡강까지 - 에필로그 <강주영의 '만주항일답사'>
강주영 편집위원  |  jbpost20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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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22  13:4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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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이 불타던 남도를 두고 길을 나선 게 십일월 첫날이었다. 만주에서 자동차 거리계는 육천킬로를 넘어섰다. 일만오천리 장정을 했다.

캄캄한 광야에서 벗들의 격려와 응원으로 길을 잡았다. 연길, 안도, 화룡, 도문, 왕청, 훈춘, 해림, 밀산, 동녕, 가목사, 흑하, 빈주, 하얼빈, 장춘, 길림 등을 누볐다. 

 

   
중러국경도시 흑하의 흑룡강 왼편이 러시아다.

20여일 북만주 항일답사를 하면서 눈물과 늠름함을 번갈아 만났다. 전설 같은 독립군의 설화(?)에 탄복하고 이주 조선인의 처참한 역사에 울었다. 드넓은 광야의 기상에 가슴이 차오르고 흑룡강 유빙에 북방의 서사가 매운 바람처럼 달렸다. 

만주 광야에서 '하나씩 둘씩 반짝거리기 시작한 별들은 삽시간에 왼 하늘을 덮어놓고 그 영원히 젊은 눈동자로 밤의 땅을 향하야 영구히 풀지 못할 수수꺼끼를 속살거리기 시작하였다.' (인용 부분은 여운형 몽골기행기에서 따 옴)

 

   
목단강. 이 유역은 발해의 성이 있던 곳이고, 20년대말에 김좌진이 이끄는 신민부 활동 유역이다.

모든 강마다 북방의 신목 버드나무가 강인한 생명의 자태를 뽐내었다. 부르하통하, 해란강, 해랑하, 송화강, 두만강, 흑룡강은 광야를 열어 세월과 사람을 흘러흘러 가니 화주 한잔에 고금의 일들이 바람 같았다. 일어나고 사라짐이 바람 같았으나 강들은 흘러서 백년, 천년, 만년 누대로 목숨을 길렀다. 

나라는 없었다. 목숨은 스스로 살았다. 임금과 벼슬아치의 말은 아름다웠으나, 수수 한톨도 길러내지 못 했다. 벼슬의 말은 싸우고 빼앗을 뿐, 꽃들은 스스로 피었으나 어디로인가에 불려갔다. 꽃들은 어디로 갔나.

 

   
백두산촌 가는 길 눈이 내려 하늘이 맑아졌다.

애비는, 아들은, 연인은 어디로 갔나? 마을을 지켜 기른건 여인들, 생명에 젖을 준 건 여인들, 사내들은 싸워 가지려 했을 뿐, 도치가 찾을 나라는 없었다. 목숨은 그리워서 살아내는 것, 목숨은 사랑으로 살아내는 것, 삶에 나라는 없었다.

애비의 애비의 그 애비의 까마득한 애비 때부터 골안개 속에 낫을 벼려 얽히고설켜서 묵고 묵은 잡목을 베고 덤불을 쳐 길을 내었다. 잠든 대지를 엎어 목숨을 기르니, 강물이 광야를 흘러 흘러 꽃이 폈다.

 

   
백두산 자락의 잣나무는 눈발에서도 늠름하였다.

에미의 에미의 그 에미의 까마득한 에미 때부터, 모진 바람과 눈발에도 에미들은 품고 품어서 아이들은 자라서 사랑하고 추수하였다. 꺼지지 않는 불씨화로 전쟁에도 지켰다. 삶의 구비구비마다 나라는 없었다. 나라는 부르고 가져가기만 했다. 

청산리 백운평 골짜기를 돌아 나오는데 불현듯 자작나무가 서 있었다. 북방의 미인이다. 영화 닥터지바고를 보았을 때 자작나무숲에서 사랑을 하고 싶었다. 항일 파르티잔의 이정표 노릇을 했을까? 쌔하얀 피부는 추위 속에서 도리어 더 팽팽히 빛났다.

 

   
청산리 백운평의 자작나무는 북방의 서사 속에 남도 여인을 품고 있었다.

어둠에서 문득 드러난 별빛 이었다가는 연인의 속살 같기도 하였다가는 "앗'하고 섬뜩해지기까지 한다. 위용과 도도함과 순수가 한몸에서 동시에 우러나는 기이한 느낌이었다. 자작나무는 북방의 서사 속에 남도의 여인을 품고 있었다.

추수가 끝난 광야는 늘 들불을 질러 뿌리를 태웠다. 하늘이 흐린 줄만 알았는데 온 북만주벌에서 들불을 내니 하늘은 늘 흐렸다. 눈이 내려서야 맑아지고 멀리 보였고 비로소 별들이 떴다. 알곡을 턴 옥수수 낟가리들이 겨울을 지켜 섰는데 암갈색 옷이 황량했다.

 

   
추수가 끝난 옥수수 낟가리는 들짐승의 피난처로 겨울을 날 것이다.

시골의 거리에는 눈이 내려도 장이 열렸다. 야생의 날고기와 곡식과 소소한 공산품들이 겨울을 맞고 있었다. 서로 모여 화주를 마시거나 우등불을 피웠다. 삶이란 저렇게 서로 기대고 나누는 것이리라. 북방의 일자형 집들은 헐겁고 추워보였나 장작과 옥수수가 시골집의 마당을 채웠다.  

북만주의 안내원은 두 분이었다. 김진환 선생과 허동혁 선생에게 감사드린다. 모진 길과 눈길에도 광야에서도 골짜기에서도 그들은 용케도 독립군의 흔적을 찾아냈다. 허 선생은 경상도 이주3세, 김 선생은 함경도 이주 3세였다. 두 분 다 용정부근 출신이다. 독립운동사 뿐 아니라 인문에도 밝았으니 여행자들의 복이었다.

 

   
장이 열렸으나 눈으로 한산하였다. 70년대의 장터를 보는 듯 했다.

응원하고 격려해주신 모든 벗들에게 고마움을 올린다. 이틀에 한 꼭지를 썼는데 새벽글 이었다. 모자라도 날 것의 느낌을 전하고자 했는데, 읽어주어 감사할 따름이다. 몇 꼭지 더 쓸 수 있으나 우선은 훗날을 기약하기로 한다.

강찬구 전북포스트 대표님과 신현영 편집장의 노고를 잊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동행한 소설가 벗 이광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그의 서사가 잘 익어서 활짝필 것임을 믿는다. / 강주영 편집위원    

 

   
왼쪽부터 안내원 허동혁, 김진환 선생, 소설가 이광재, 강주영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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