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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별들이 울었다 <강주영의 '만주항일답사'>
강주영 편집위원  |  jbpost20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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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20  10:4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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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써 뜻을 다 할 수 없다. 뜻으로만 세상을 만날 수 없음은 분명하다. 벼슬아치들과 선전관들의 파발마는 요란하나 백성들은 늘 광야에 서 있다. 애비의 애비의 그 애비의 애비적부터 그들의 교시는 아름다웠으나 안개는 짙다.

민촌의 아궁이에서 오른 불기만으로는 안개는 쉬이 걷어지지 않으리라. 지금 길이 있되 이 길은 걸을 수 없다. 백성들은 민촌에서 수군거리기만 한다. 말은 넘쳤으나 말로써 아궁이는 데워지지 않으리라. 

   
만주의 광야

어느 날 갓밝이에 몇 초군들은 낫과 도치를 벼르리라. 하여 얽히고 설키고, 묵고 묵어 꿈쩍하지 않을 듯한 잡목들을 베고 찍어서 초군들은 새 길을 낼 것이다. 안개 속에 민촌의 백성들이 베어진 잡목들로 불씨 화로에 새 불을 당겼을 때 길은 뚜렷해질 것이다. 이때 비로소 길은 길이리라. 

만주에 항일 답사 왔다가 광야에서 별을 본다. 젊은 날의 문학과 혁명과 사랑을 되새기며 갈 길을 여민다. 추수가 끝난 광야에 들불을 질러 어두웠던 하늘이 낮에 눈이 내려 맑아졌다.

 

   
초승달은 사랑의 그리움이 있다. 채워지지 않은 아름다움 / 안병길 님 사진

바람이 맑은 숯불꽃을 무리져 날려 광야의 흰 눈밭에 달려드는 별들이였다. 캄캄히 깊은 온 광야에 숯불 꽃들이, 눈밭에 수천 수만의 반딧불이가 바람의 갈기에 휘달려 쏟아진다. 이리 빛나서 쏟아지던 시절이 있었는가!

풀한포기 살아남지 못한 남미 우유니 소금 대평원의 별, 만주 광야의 별, 가도가도 평원이기만 했던 곳들, 아직 만나지 못한 새날의 그리움들이 상처에 절여져 숯불로 타서는 흑먹의 시간들에 하늘로 올랐다. 흑먹의 어둠과 맑은 숯불꽃 가루들의 별! 

 

   
안데스 고원의 광야

이쪽의 끝 어둠과 저쪽의 끝 맑은 빛남, 두 개의 세계가 같은 공간과 시간에서 서로 어울려 흐르고 있었다. 아니다. 시작이 흑먹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깊은 흑먹 속에서 시간과 그리움이 뭉쳐져 단련되고 적층되어서 오로지 순수만이 남아 맑게 빛이 나는 것일지도...  저 빛은 사랑의 순수라고, 더 빛나고 덜 빛난다고 사랑에 차이가 있는 게 아니다.

모든 사랑은 아름다운가. 사랑은 쓰리고 아퍼서 빛나지 않을지라도 빛나지 않는 게 아니리라. 사랑은 상처에 뿌려진 소금처럼 늘 아리다. 건드리는 자 없는 땅, 사막과 광야의 어둠에서 사랑은 맑아서, 한줄기 꿈만 같다.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평원, 소금의 무덤에서 상처는 빛이 났다.

남미 사막과 북만주 광야의 밤에 추위는 뼈에 스몄고 별들은 울었다. 매운 추위에 갈기를 일으켜 달리는 밤바람은 별들의 울음이었다. 

지난 여름 우유니 소금 평원의 별을 보며 어줍잖은 시를 쓰고 나는 이렇게 적었다.

"소금 결정의 순수들이 눈을 뜰 수 없이 빛이 나서 바로 볼 수가 없다. 너를 사랑하던 때, 살구꽃 휘엉휘엉 피던 날, 숨 한 번 내쉬어도 꽃이파리 날리던 날,  곱게 빚은 빛깔로 다가오던 가을의 어느날, 새하얀 눈밭에 동백꽃 붉던 날, 너는 빛이 나서 차마 바로 볼 수가 없었다. 바람의 돛대를 직시하며 앞날의 두려움에 떨면서도 새하늘 보고자 별 빛을 우러를 때, 검은 하늘을 찢고자 하였을 때, 너는 빛이 나는 사랑이었다...... 가면 가는대로, 가지 않으면 그 뿐, 애닳을 것도, 증오하고 분노할 것도 없으리라. 사랑할 수 있으면 사랑하여야지 무엇을 망설인단 말인가?"

 

   
스마트폰 카메라로 만주 광야의 별이 찍히지 않는다. 전주 풍남문 집회의 풍등 사진으로 대신한다.

안데스의 고원 사막에서도, 북만주 광야에서도 별은 카메라에 잡히지 않았다. 그렇다고 별이 뜨지 않은 것은 아니다. 별은 떠서 분명 쏟아지고 있었다.

소금, 눈, 바람, 별들이 있었고 갓밝이는 멀었다. 비어서 새로 채워지는 사막과 광야! 나는 내 갈 길을 가야겠다. 그리고 사랑하겠다. / 강주영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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