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은 일년 중 가장 을씨년스런 계절 아닐까 싶다.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접어들면서 하루가 다르게 날씨가 추워지고 한때 풍성했던 만물도 가진 것을 모두 버리거나 비우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박장우 전북포스트 주필

지난주 운일암반일암을 자전거로 돌아보면서 부근에 있는 명도봉(863m)에도 올랐다. 칠은교에서 가파른 능선길을 따라 올라가면 곧게 선 바위 봉우리가 다가온다. 명도봉 정상에 서면 운일암반일암 전경이 발아래 펼쳐진다.

하산길은 돌들로 계단을 이룬 계곡으로 내려왔는데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나뭇잎들이 마치 비가 내리듯 떨어지며 숲속을 뒤덮는 장관을 만났다. 벚꽃철에 볼 수 있는 꽃비처럼 무수한 갈색 나뭇잎들이 나부껴 속으로 '나뭇잎비'라고 불렀다.

학문적으로 나무비라는 명칭은 있다. 밤에 낮아진 기온이라든지 안개의 영향으로 숲속 나뭇잎에 맺힌 물방울이 이른 아침 햇빛이 비치기 시작할 때 땅에 떨어지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숲 생태계 식물들의 생육에 아주 좋은 것으로 알려진다.

나이 든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는 91세 할머니가 50, 60대 동호회 회원들하고 제주도에서 자전거 일주를 하는 모습이 방영됐다. 그 할머니는 힘이 부치고 회원들이 말리는 바람에 중도에서 포기해야 했지만 열정 하나는 대단했다.

그 할머니는 “집에 가만히 있으면 괜스레 지나간 후회 등이 생각나지만 자전가 탈 때 만큼은 아무 잡념이 없다”고 자전거 타는 이유를 설명했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오늘 안하면 언제 하랴’는 좌우명을 갖고 있다. 용돈벌이 하느라 일주일에 하루밖에 쉬는 날이 없지만 쉬는 날이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산에 가든지 자전거를 타든지 한다.

한 여름 폭염 날씨에도 자전거 여행에 나서기도 했는데 어떤 사람은 ‘또라이’라고 비웃기도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계획했던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인데 나이 들면서 그런 생각은 더욱 절실해졌다.

11월은 인생의 가을인 황혼기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시간이 될 것 같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지나간 세월 중에서 재미있고 신났던 일들보다는 얼굴이 후끈 달아오를 정도로 부끄러웠던 과거사들이 더욱 강하게 떠오르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다. 91세 자전거 라이더 할머니의 회고담처럼 말이다.

일본 어느 대학교수의 가을에 얽힌 이야기는 우리에게 진한 감동을 전해주기에 충분하다. 김동길씨가 연세대 교수시절 펴낸 에세이집에 실린 「가을에 부치는 노래」에 나오는 내용이다.

“어느 가을날, 강의실에 들어온 대학교수는 창밖의 들녘 모습만 한참동안 바라보다 눈물을 주르르 흘리고 그대로 교실을 나갔다. 학생들은 그때 받은 감동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회고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늦가을의 텅빈 들판이 그 교수에게도 깊은 회한을 던져주지는 않았는가 싶다.

시인 윤동주의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이란 시도 이때쯤이면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라디오 방송에서도 가장 많이 낭송되는 시로 분류될 정도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 볼 이야기들이 있습니다’로 시작되는 이 시는 미래에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지금 열심히 무엇인가 하겠다는 다짐으로 끝을 맺는다.

11월 하순부터는 한해를 정리하는 망년회 모임이 시작된다. 더불어 한해를 좀 더 알차게 마무리하거나 남은 삶을 좀 더 보람차게 꾸려가는 시간도 함께 가져보면 어떨까 싶다. 독일시인 괴테는 “고난도 지나고 나면 감미롭다”고 했다.

어떤 무명 산악인은 “추억은 고통에 비례한다”고 말하곤 하는데 어느 철학자보다 살아있는 가르침으로 느껴진다. 그 무명 산악인은 불쑥 생각이 나면 배낭을 메고 이런저런 여행에 나서곤 한다. 백두대간 종주는 물론 한강, 낙동강 탐사도 마쳤다. 섬진강 탐사가 가장 재미없었다고 했다. 길이 너무 평탄해서 추억에 남을 만한 고생한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라 한다.

2017년, 이제 50일도 남지 않았다.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을 한 가지씩이라도 해보면 어떨까 싶다. / 발장우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