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구 전북포스트 발행인

‘찌라시’ 수준의 채용공고 하나 때문에 전라도가 들썩이고 있다. 반월공단에 있다는 남양공업(주)이라는 업체가 '전라도 출신 채용 불가'라는 채용 공고를 냈다가 전라도의 집중 포화를 맞고 있다. 각급 지방의회와 국회의원, 사회단체까지 나서 국가인권위의 조사와 법적 조치를 촉구하고 있다. 이 회사에 하청을 주고 있는 우리 지역의 대기업에는 하청을 자르라고 압박하고 있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왜 또 전라도인가?’ 라는 자괴감을 떨쳐낼 수가 없다. 조그만 회사까지 전라도를 특정해서 내놓고 경멸하고 배척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전라도는 대체 왜 이리 만만해진 것일까...? 전라도에서 나고 자란 나로서는 그들의 그 같은 적개심을 이해하기 어렵다. 내가 보고 겪은 전라도는 수려하고 유연하다. 전라도 사람들은 심성이 곱고 둥글다. 남들에게 무단히 욕먹을 만큼 천박하지 않다.

전라도에 대한 노골적 배척은 결국 정치적, 경제적 소외에서 왔다고 본다. 정치와 함께 경제적 기득권을 확보한 세력들이 자신들의 우월권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라도를 ‘희생양’ 삼은 것이다. 어느 조직이든 비정상적으로 흘러갈 때는 희생양을 찾아 누명을 덮어씌우는 게 생존 논리다. 전라도 사람들을 그악스럽게 만든 것도 정치적, 경제적 소외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 주체는 기득권 세력이다.

학교에서의 ‘왕따’나 비슷하다. ‘왕따’는 당사자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학급이라는 일정 테두리 안에서 외부의 집단적 힘에 의해 결정된 것이다. 학급 안에서 권력을 가진 아이들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만만한 대상을 찾게 된다. 누명을 씌워 그를 닦달하고, 다른 아이들까지 가세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들의 부정한 행태를 정당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모든 원인을 ‘왕따’에게 덮어씌우고, 그를 희생양 삼아 자신들은 면피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전북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금강 이남이니, 노령 이남이니 하는 말을 들춰낼 것도 없다. 진위 여부를 가릴 수도 없거니와 고래(古來)적 얘기를 현재의 담론에 담을 수는 없는 일이다. 전라도의 소외는 경상도와의 정치적, 경제적 차별 이후다. 기득권 세력은 경상도를 집중 육성했고, 그 집중화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라도를 이용한 것이다.

전라도는 그렇게 전략적으로 대한민국의 쓰레기장이 됐다. 나쁜 것들은 몽땅 전라도에 얹어 버린 것이다. ‘전라도는 본래 배반의 땅이다’ ‘전라도 사람들은 믿을 수가 없다’ ‘반골 기질이 세다’ 등등등... 드라마에서도 전라도 사람들은 깡패나 건달, 사기꾼으로 그려냈다. 전라도에 사회악을 몽땅 덮어씌우고, 사회적 병폐를 전라도 사람 탓으로 돌렸다. 전라도와 전라도 사람에 대한 부정적 신화는 그렇게 생산되고 확대됐다.

전라도 사람인 나로서는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모멸감을 참을 수 없다. 중소기업의 치기로 생각하고 웃어 넘겨도 될 만한 일 때문에 전라도 전체가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것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정치권은 ‘이참에 잘 걸렸다’는 투로 광장에 끌어내 우리가 당한 한을 앙갚음하듯이 몰매를 퍼붓고 있다. 하지만 이 업체를 고립시키고, 법적 조치를 취한들 ‘전라도 출신 배제’ 정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전라도 무시의 대척점에서, 또 다른 ‘전라도’가 될 뿐이다.

우리가 힘을 키우는 것이 길이다. 전라도가 우월한 위치에 있다면 최소한 노골적인 적대감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 전라도 사람들도 깨어나야 하고, 특히 위정자들이 정신 차려야 한다. 정당을 등에 업고 개인의 입지에만 천착하지 말고, 전라도와 전라도 사람들이 멸시받지 않는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분골쇄신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까지 이같은 수모를 넘겨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강찬구 인터넷신문 ‘전북포스트’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