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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한강 거슬러 낙동강을 향하다 <김길중의 '자전거로드'>
김길중  |  jbpost20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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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11  14:4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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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왔고 JH와 난 그 봄을 온몸으로 갈랐다.

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었다. 유달리 긴 겨울날 거리에서 보내야 했던 겨울이었다. 그 겨울도 지나가고 봄이 오고 있던 무렵, 동창 JH와 한강-낙동강을 도전해 보기로 했다.

   
 

탄핵 심판이 막바지에 달하던 1월, JH가 찾아와 하루를 보내고 갔다. 몇 안 되는 친하게 지내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밤사이 여러 이야기를 나눈다.

이 사태는 언제쯤 어떻게 끝맺게 될지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엉뚱하게도 이 대화의 결론은 ‘자전거 여행으로의 공모’였다. 여전히 막연한 계획일 뿐인 유럽여행에 관한 기대와 두려움 속에서 갈등중인 내게 용기를 불어주었다. 5월 연휴에 서울과 부산을 달려 종주를 해보자는 데로 뜻이 모아졌다.

자전거를 통해 많은 걸 얻었고 그 얻음을 나누는 게 필요하다 싶었다. 그래서 자전거 여행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 작년이다. 내가 자전거를 즐겨하는 것에 얼마만큼의 영향을 받아 타기 시작한 주변 사람도 여럿이다. JH도 그중 한 명이다.

미국 생활을 하던 4년 전쯤의 일이다. 카톡으로 오래간만에 말을 건네 온 순간 나는 20만 원짜리 생활자전거로 홀로 곰티를 넘고 있었다. 땀을 식히며 장시간의 대화를 나눈 JH의 마지막 말은 ‘좋은 취미를 가졌군!’이다. 여행기를 써서 올리고 지인들에게 보내주었는데 이를 유심히 읽은 모양이다. 그때부터 소리 소문 없이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고 1년이 못 되는 동안 열심히 탄 것이다. 서울․부산 간 550Km가 넘는 만만치 않은 코스를 같이 달려보자는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둘은 각각 작년에 그 길에서 고전을 겪었다. 청주를 통해 남한강을 달리다 봄날의 비바람에 탈나고 이틀을 곯아떨어진 게 길벗이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여름, 부산을 출발해 낙동강 험난한 고갯길에 탈진해 구미에서 포기한 것이 JH의 그 길에 대한 기억이다.

4박 5일의 계획은 합의를 통해 3박 4일로 단축되었다. 하루에 150km를 달려야 하는 일정이다.작년의 경험도 있어 가족과 지인들의 염려를 안심시킨 것은 둘의 여정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팔당댐 곁의 한강 자전거 길을 달리다. 잠실에서 7시반에 출발해 팔당을 거쳐 두물머리에서 늦은 아침을 먹는다.

   
 

마침내 부처님 오신 날 아침이 되었다. 동생네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양재천을 달려 잠실 유람선 선착장에 도착한 것이 7시다. 지하철이 안 다니는 시간을 아껴 동탄에서 수원까지 달려 지하철을 타고 온 JH가 먼저 도착해 있다.

나이 50이 되어 그 코스를 도전하는 게 적지 않은 근심과 부러움이 섞였나 보다. 팀원들의 단체톡방에 매일의 일정을 보고하기로 했단다. 이때부터 팀장인 JH가 팀원들에게 “나 어디까지 왔고 올만했고 신난다” 이런 식의 보고를 매일 하게 된다.

“10-15킬로 정도 달리고 쉴까?”라고 묻는데 “밥 먹을 때 말고는 달려야 하는 거 아니냐”고 타박한다. 내 경험이 많다 하나 스스로의 페이스를 잘 알겠지 싶어 “달려보면서 조절해보자”로 조율되었다. 팔당까지 달려 아침을 먹기로 하고 출발한다. 광나루, 하남과의 경계를 거쳐 미사리에 도착한다.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던 날인지 예상 밖으로 한가하다. 팔당에서 마땅하게 먹을 만한 음식점을 찾지 못하고 내친김에 달려 두물머리 까지 달린다. 먹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고 칼로리 보충으로만 대하는 나와 달리 JH는 미식가다. 선택된 아침은 황태해장국. 45Km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JH의 라이딩 실력은 일단은 합격.

작년 홀로 달리다 탈이 났던 양평과 개군 사이 후미재에 도달했다. 그 일을 들려주며 처음으로 만난 고개를 넘는다. 확실히 고갯길에 대한 훈련이 되어있지 않다. 속도는 좀 처지기는 했지만 발을 떼지 않고 쉼 없이 굴려 넘어선다. 이 정도라면 고갯길 넘기도 충분해 보인다. 이포보를 지나 여주쯤에서 점심을 먹으면 되겠다 싶어 한참을 지루하게 달린다. 본래 굽이쳤을 강이 직선으로 펴진 곳이 많은 것 같다. 그 절정이 이 구간이다.

이포보를 지나 여주를 향하던 길이었을 것이다. 풍경과는 달리 지루하고 긴장이 느껴지지 않는 구간이다.

어느 순간 우리보다 연배가 5,6살은 더 되어 보이는 사내가 다가와 말을 붙인다. “부산에서 간밤에 인천에 도착했고 새벽에 아라 뱃길을 거쳐 여기까지 왔다”며 본인을 소개한다. 2박 3일 일정으로 예상하고 있단다. 오늘의 목적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충주가 아니라 수안보라고 한다. 우리보다 50Km 이상 더 달릴 계획이다. 2박 3일에 끝내려면 200Km 이상씩을 달려야 하는 코스이긴 하다. 내심 가는데 까지 같이 달려보고 싶은 눈치다. 적당한 거리에서 쉼을 핑계로 먼저 보내게 되었다. “안전하고 즐겁게 가시라”는 인사말을 뒤통수를 향해 보냈다.

   
 

여주에서의 점심은 알탕이다. 미식가와 동행한 보람이 있다. 오전에 달린 게 96Km, 이 페이스라면 충주를 지나 수안보까지도 가능하지 않나 하는 욕심이 슬그머니 생긴다. 달려보고서 결정하기로 하고 페달질을 다시 시작한다.

강은 점점 상류를 향하고 있다. 풍경도 조금씩 달라진다. 강천섬과 장남이 고개를 넘고 원주시 부론을 밟아 나간다. 비내 쉼터에 도달한 시간은 4시쯤. 오전에 한차례 마셨던 이온음료를 다시 먹는다. 쓰고 목말랐던 갈증이 모두 가신다. 물로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 그것을 고안해낸 과학의 힘은 참으로 위대하기도 하다. 한 여름 생수 2리터로 채워지지 않던 갈증을 해소한 ‘마법의 음료였다’며 건네는 경험이 나보다 낫다.

페이스 조절이 다소 잘못되었는지 더워선지 속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충주에 거의 임박한 ‘임페리얼 레이크 CC’옆 고개를 넘어설 때  몇 개의 고개가 남았는지를 묻는다. 힘겹다는 소리다. 수안보까지의 라이딩은 포기한다.

 

마침내 탄금대에 도착한 시각은 6시 반쯤, 11시간 반의 일정이 마무리되었다.

모자간에 나선 모양의 어느 여성이 수안보까지의 길을 묻는 걸 곁에서 듣는다. 어디서 출발했는지 모르지만 수안보까지의 여정이 쉽지 않아 보인다. 시간도 그렇고 수안보까지의 오르막도 그렇고. 말참견을 못하고 그 자리에서 엇갈린다. 숙소를 먼저 잡고 갈비로 허기진 배를 채운다.

고단했던 하루가 당연하다. 9시가 못되어 JH가 먼저 잠들고 곁에서 꼼지락 거리던 나도 잠에 빠져든다. 깊게 자지 못하고 몇 번을 깬 거 같다. JH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한겨울, 많은 사람들이 불면과 우울한 날을 보냈을 것이다. 그 끄트머리가 거의 목전에 다가왔다. 내일이면 사전투표가 있는 날, 수안보쯤에서 아침을 먹으며 내 권리를 행사해야겠다고 맘먹고 있었다.

'마법의 음료'를 만났다. "생수 2리터로 해결되지 않던 갈증이 이거 하나 먹고서 싹 가셨어"라고 JH가 일러 주었다. 비내쉼터에서 스포츠 음료 한캔을 마시고서는 배고픔마저 감춰지는 신비함을 처음 맛보았다.

   
 

이 무렵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을 하곤 했었다. 이제 곧 이것도 끝나게 될거고 ‘일상으로의 복귀’를 준비해 두어야 한다고 했다. “주말마다 광화문과 광장으로 자동적으로 향했던 마음 자락을 단속해 나가면 좋겠다”고 했다. ‘관성마저 붙어버린 상태의 해소’에서 허무한 마음마저 일 이후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렇게 장거리를 달리며 치유해 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냐”고 누군가에게 말했다.

요동치던 세상이 마냥 요동칠 리는 없을 테고 또 우리는 각자의 터전에서 묵묵하게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거리로만 향하던 시선이 별과 풍경과 주변의 사람들, 그리고 나에게로 돌아  가는 게 가장 좋은 일 아니겠는가?

그나저나 이제 세상은 이렇게 자전거 여행을 즐겨도 될 만큼 이른 것은 확실한 모양이다.

하루를 마치고 탄금대에서 일정을 마친 둘은 자전거를 끌고 모텔에서 하룻밤을 청했다. 단촐한 배낭이지만 풀어지면서는 여기저기 너저분하게 놓아진다.

/ 김길중 한의사

 

   
 

<글쓴이가 드리는 말씀>

지난번 글에 ‘탄핵’, ‘촛불’과 같은 단어의 등장으로 불편하신 분도 있었나 봅니다. 이 단어와 소재가 쓰이는 건 그 시기 나의 느낌과 소재가 연관이 있는 문제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런 글을 정치적인 시야로 보는 것 자체가 정파적인 게 아닌가 싶어 이렇게 사족을 달아 설명 드리는 것입니다. 탄핵에 관하여 어떤 입장이었건 그 순간을 함께 지나온 소재로만 여겨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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