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측에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법원의 1심 판결이 지난주 내려졌다. 뇌물공여, 횡령, 국외재산도피,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국회 위증 등 모두 유죄로 인정됐다.

박장우 전북포스트 주필

이번 법원 판결에 대해 법조계와 국민들은 유죄 인정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양형에 대해서는 미흡하다는 반응인 것 같다. 이재용 부회장이 수동적으로 범죄 행위에 가담했다는 점을 감안했다 하더라도 특검 구형 12년과는 너무 격차가 크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일부에서는 삼성 측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돈에 대해서는 법원이 뇌물이 아니라고 판단한 부분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삼성 측이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의식해서 최순실 측과 미르재단 등에 똑 같이 돈을 제공했는데도 재단 쪽 출연금에 대해서는 다른 판단을 내놓았다는 지적인 것이다.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본류 중 하나는 자신들의 사익을 추구하기 위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을 만들고 기업들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빼앗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기업들도 절대 권력과 최측근이 만든 재단에 돈을 제공함으로써 혹시 발생할지 모를 미래의 피해 등으로부터 보호받고자 하는 보험 성격의 포괄적 뇌물죄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는 해석도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임명된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을 전두환 전 대통령에 의해 만들어진 일해재단에 비유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이 퇴임 이후 활동의 발판으로 양 재단을 만들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도 없지 않았었다는 이야기였다.

이재용 부회장 사건 1심 재판부가 미르, K스포츠재단 출연금에 대해 뇌물죄를 적용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일부에서는 이와 관련된 기업들이 너무 많아 이에 따른 부작용을 감안하지 않았는가 하는 풀이도 없지 않다. 다시 말해 삼성 측의 양 재단에 대한 출연금에 뇌물죄를 적용하면 다른 기업들도 뇌물죄로 처벌해야 하는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 말이다.

그러나 1심 재판부가 이번 이재용 사건을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전형적인 정경유착으로 판단했다고 한다면 정경유착의 표본인 미르, K스포츠재단 출연금에 대해서도 뇌물죄로 처벌하는 엄벌의 의지를 보였어야 마땅했을 것 같다. 그래야 앞으로의 정권에게도 유사한 정경유착 행위를 차단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됐을 것 같고 말이다.

우리나라의 정경유착은 멀게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시절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정부 주도의 국가 개발정책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기업들은 적극적으로 권력의 비위를 맞추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정경유착의 절정은 전두환 등 신군부정권에서 이루어졌다. 절대 권력이 자신들의 이익추구를 위해 기업들에게 천문학적인 정치자금을 강요하거나 재단 출연금을 요구했다.

1988년에 열린 5공 특위에서 기업들은 “절대 권력자가 손을 내미는데 이를 거절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당시 정치권과 기업들은 정경유착을 끊기 위한 대책을 내놓기도 했었다.

그러나 15년이 지난 2003년, 노무현 이회창 대선자금 검찰수사 때 정경유착 현상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기업들이 돈을 자동차 등으로 실어 날랐다 해서 차떼기라는 신조어도 생겨났었다. 그때도 정권과 기업들은 정경유착을 근절하겠다는 대국민 약속을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또 다시 절대 권력과 기업 간 부정한 거래가 또 입증된 것이다. 그리고 정경유착의 그림자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도 짙게 드리워져 있는 것이고 말이다.

만약 이번 정경유착 사건에 대해서도 너무 기업 측 부작용을 우려하여 관계자들을 엄벌에 처하지 못한다면 다음 정권에서도 또 다시 정경유착 사건이 발생할지 모른다. 특히 이번 법원 판결이 그것을 보장하는 것이나 다름없게 될 것 같으니까 더욱 문제라는 생각이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을 포함한 대선자금 검찰수사가 정치자금을 한층 투명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면 이번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은 정경유착을 완전히 청산하는 기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 / 박장우 주필